사원증도 없이 맨몸으로 편한 차림에 원하는 곳으로 출근해 미리 찜해둔 좌석으로 향하면 내 몸에 꼭 맞는 책상이 기다리고 있다. 출퇴근 시간도 회사가 아닌 나의 패턴에 맞출 수 있으니 업무 효율은 물론, 만족도도 높아진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부장님이 없다.
지난 12일 SK텔레콤이 최근 수도권 3곳에 문을 연 거점오피스 중 하나인 '스피어(Sphere) 신도림'을 찾았다. 스피어 신도림이 있는 서울 구로구 디큐브시티 오피스동은 지하철 1·2호선이 다니는 신도림역을 나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초역세권'이다.
건물 내로 들어서자 SK텔레콤 스피어 신도림이 21층과 22층에 있다는 층별 안내문이 보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1층에 내리면 개장 직후 이곳을 찾았다는 박정호 SK텔레콤 부회장과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의 기념 화환이 눈에 들어온다.
고층에 위치한 만큼 눈앞의 풍경은 하늘과 마주할 만큼 탁 트였다. 주변에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많은 지역임을 고려해 스피어 신도림은 내부 콘셉트를 '도심 속의 공원'으로 정했다. 사무실 곳곳에 식물이 자리하고 있다. 거점오피스마다 내부 콘셉트는 차별화를 뒀다. 전망이 좋은 창가 좌석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함이 필수다. 매일 오전 7시부터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진행하는 좌석 예약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한다.
SK텔레콤은 거점오피스에서 구성원들이 회사의 정보통신기술(ICT) 강점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입구부터 ICT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출입을 위한 별도 사원증이 필요 없다. 얼굴이 출입증이다. 머뭇거림도 없다. 문을 여는 데 필요한 시간은 0.2초.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다. 누구 페이스캔(NUGU facecan)을 통해 SK텔레콤 임직원 5000명 이상의 얼굴을 인식한다. 마스크를 쓴 상태로도 인식하기 때문에 인식 과정에서 마스크를 벗거나, 내려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빠르게 얼굴을 인식하지만 위변조 방어 기술을 적용했다는 게 회사 직원의 설명이다.
특히 거점오피스 출근 직원은 노트북 없이 맨몸으로 출근해도 된다. 아이데스크로 불리는 업무 시스템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자리에 있는 태블릿PC를 통해 얼굴만 인식하면 을지로 SKT타워에 있는 컴퓨터 세팅을 그대로 가져온다. 현재 약 30석을 운영 중인데, 직원 반응을 살핀 후 확대를 검토할 계획이다. 이는 기업 간 거래(B2B) 등으로 외근이 잦은 직원에게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외부망을 이용할 때는 생체 인식 기반 본인 확인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데이터 유출 우려도 없다. 물론 자신이 기존에 사용하던 노트북을 연결해 업무를 볼 수도 있다.
회의는 메타버스 플랫폼과 가상현실(VR) 기기를 활용한다. 이날 방문한 스피어 신도림에서는 VR 기기인 오큘러스퀘스트2를 활용해 다른 거점오피스에 근무 중인 직원을 메타버스에서 만나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직원이 눈에 띄었다. SK텔레콤은 현재 메타(옛 페이스북)의 플랫폼을 활용하지만, 하반기 회사의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임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나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SK텔레콤은 개인 근무 좌석을 '아일랜드(섬)'라고 부른다.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일한다는 의미에서다. 각 책상에는 나의 섬으로 찾아온 동료를 맞이하기 위한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작은 의자)도 배치됐다. 개인 짐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일부 좌석은 책상 높낮이는 물론, 조도(照度)까지 나의 입맛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한 번만 저장하면 언제든 버튼 한 번으로 내 몸에 꼭 맞게 설정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과거에도 거점오피스를 개장한 바 있다. 당시에는 잠깐 들려 사용하는 용도였다면 이제는 메인 오피스인 을지로 SKT타워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게 한 게 특징이다. 원할 경우 매일 원하는 거점오피스에서 일해도 된다. 현재 신도림, 경기 일산·분당 등 3개인 거점오피스는 오는 7월 워커힐호텔을 비롯해 지속해서 늘어날 계획이다. 근무시간은 이미 탄력적으로 운영 중이라, 원하는 출퇴근 시간을 입맛에 맞게 정할 수 있다.
구성원 개인에 초점을 맞춘 거점오피스를 통해 개인별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SK텔레콤의 계획은 현재 순항 중이다. 스피어 신도림 기준 업무 좌석 총 170석 중 이용률은 60~70%를 기록 중이다. 직원들은 주 2~3회 이곳을 찾고 있다고 한다.
SK텔레콤은 이제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거점오피스 확대로 인해 기존 본사의 유휴 거점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다. SK텔레콤 거점오피스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지금 본사에는 구성원들 자리가 그대로 남아있고, 거점오피스에 출근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유휴공간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라며 "본사는 조직 근무에 중점을 두고 있으니 조직에 초점을 맞춘 공간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