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과 맞물려 반도체 생산의 핵심인 웨이퍼(반도체 원판) 수요가 폭발했다. 업계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불균형 상태가 2026년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관련 기업들은 웨이퍼 공급 가격을 올리는 동시에 생산 시설에 수조원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22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해 웨이퍼 재료 시장은 전년 대비 15.5% 성장한 404억달러(약 49조원)로 나타났다. 전체 반도체 소재 시장 규모는 2020년 555억달러(약 67조원)에서 1년 만에 15.9% 뛴 643억달러(약 78조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다.

반도체 웨이퍼 위에 새겨진 회로. /인텔 제공

웨이퍼는 반도체 핵심재료로, 원통 모양의 실리콘을 잘라 만든 판이다. 이 위에 회로를 새겨 네모난 모양으로 자른 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반도체다. 크기는 가전이나 TV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만드는 6인치(100㎜), 8인치(200㎜) 등으로 나뉘며,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첨단 반도체는 12인치(300㎜) 웨이퍼로 생산한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흐름이 강해지면서 가전과 자동차, PC 등에 쓰이는 반도체 수요가 늘었다. 또 빅데이터,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모바일, 자율주행 기술, 데이터 센터 반도체 수요도 크게 증가했다. 늘어난 수요만큼 반도체 제조사가 생산 능력을 확대하면서 웨이퍼 등의 재료 수요도 확대된 것으로 파악된다.

재료 수요가 늘자 웨이퍼를 만드는 주요 업체들은 공급가격을 올리고 있다. 점유율 1위 일본 신에츠화학, 2위 섬코는 지난해 각각 20%씩 공급가를 인상했다. 올해 들어서는 대만 업계 2위 FST와 3위 웨이퍼웍스가 웨이퍼 가격을 약 10~30% 올린다고 했다. 현재 FST의 경우 주문이 2024년까지 밀려있고, 이런 수요 덕분에 두 회사의 올해 매출은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최소 2026년까지 웨이퍼 부족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원재료인 폴리실리콘 가격 상승이 웨이퍼 공급가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시모토 마사유키 일본 섬코 회장은 “실리콘 웨이퍼 공급 부족이 이렇게 장기화한 것은 초유의 사태다”라고 했다. 세계 3위 대만 글로벌 웨이퍼스도 가격과 수요 모두 대단히 좋은 상황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첨단 반도체 공정에 사용하는 12인치 웨이퍼. /TSMC 제공

또 웨이퍼 증산을 위한 시설 투자도 가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유일 웨이퍼 제조사이자 세계 5위 사업자인 SK실트론은 앞으로 3년간 1조500억원을 들여 웨이퍼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다. 글로벌웨이퍼스는 4조3000억원의 시설투자를 하기로 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 19개 대형 웨이퍼 업체가 생산력 증대에 나선 것으로 파악되며, 10개 업체는 올해 추가 공장 착공에 나선다.

아짓 마노차 SEMI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에 대한 견조한 수요와 업계의 생산능력 확장에 힘입어 반도체 재료 시장도 지난해 이례적 성장을 보였다”라며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전 세계 모든 시장에서 반도체 재료 시장의 성장이 나타났다”고 했다.

반도체 재료 시장의 성장은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TSMC, 삼성전자, 인텔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생산 능력을 더욱 높이는 데다, 반도체 공급난도 지속되고 있어서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보고서를 통해 올해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이 전년 대비 11% 증가해 사상 최고인 5651억달러(약 686조8800억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