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애플카의 자율주행 관련 칩 개발을 국내 반도체 외주조립·테스트기업(OSAT)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세계적 강자 퀄컴도 국내 업체에 전력관리반도체(PMIC) 후공정을 맡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가 확장하면서 국내 OSAT 경쟁력도 인정받는 분위기다.

애플 관련 소식을 전하는 미국 정보기술(IT) 매체 맥루머스는 “애플이 한국의 OSAT 기업과 애플카용 자율주행 칩 모듈 개발에 나섰다”고 최근 보도했다. 그러나 해당 매체는 어떤 회사가 애플 칩을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애플은 지난 2018년에도 PC용 칩을 한국 OSAT에 맡겼다.

애플카 가상 이미지. /인터넷 캡처

국내 OSAT 기업 중 하나인 네패스그룹은 퀄컴으로부터 전력관리반도체(PMIC)의 후공정을 지난해 3분기부터 수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와 NXP의 제품도 처리하고 있다. 특히 NXP의 경우 자율주행의 기초가 되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레이더센서의 양산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제조는 크게 두 과정으로 분류된다. 웨이퍼(반도체 원판)에 회로를 새기는 것을 전(前)공정이라고 부른다. 회로를 새긴 반도체를 개별 칩으로 분리하고 조립하는 패키징, 제품의 성능과 신뢰성을 시험하는 테스트 과정은 후(後)공정이라고 한다. 이 후공정을 진행하는 업체가 바로 OSAT 업체들이다.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직원이 3D 낸드플래시를 검사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과거 국내 후공정 업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만드는 메모리 반도체의 조립이나 테스트를 주로 담당했다. 그러나 소품종 대량생산이라는 메모리 특성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외주 비중을 적게 유지하고, 자체적으로 후공정을 해결해 왔다. 이는 국내 후공정 업계가 제대로 크지 못하는 배경이 됐다.

반면 다품종 소량생산인 시스템 반도체에서 후공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통해 생산되는 반도체의 최종 제품화가 후공정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후공정이 강한 지역은 대만과 미국 등이다. 대만은 파운드리 1위 TSMC와 함께 성장한 업체들이 즐비하다. 글로벌 10대 반도체 후공정 기업 중 세계 1위 ASE를 비롯해 대만 기업만 6곳이다.

대만은 미디어텍 등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가 그린 설계를 TSMC와 UMC 등 파운드리가 전공정을 맡고, 자국 OSAT가 후공정을 맡는 생태계가 꽤 견고하다. 미국 역시 퀄컴, 애플, AMD, 엔비디아 등 주요 팹리스가 자국 파운드리에 반도체 생산을 의뢰하고, 업계 2위 엠코 등이 후공정을 담당하는 과정이 공식처럼 굳어져 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이 메모리 위주로 성장하면서 그간 국내 OSAT 업체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 등 국내 파운드리 저변이 넓어지면서 동반 성장이 이뤄지는 중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지난 2019년 시스템 분야 세계 1위를 목표하는 ‘비전 2030′를 발표하고, 정부가 관련 시장 육성에 본격 나서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TSMC를 등에 업은 대만 업체들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선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라며 “다품종 소량생산인 시스템 반도체가 확장할수록 후공정 업체도 성장한다”라고 했다.

/엠코 제공

전 세계적으로 파운드리 호황이 이어지면서 대만과 미국 업체들은 설비 투자를 늘려 반도체 후공정 시장 장악력을 더욱 높이려고 한다. 국내 기업 또한 높아진 실적을 토대로 수백억~수천억원의 투자를 집행 중이다. 국내 기업들은 전년 대비 수십%의 실적 개선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는 국내 업체들이 지난해 생산라인을 30~50개 이상 추가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반도체 후공정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OSAT 시장 규모는 지난 2019년 575억달러(약 71조원)에서 2026년 823억달러(약 101조7000억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내 OSAT 역시 성장이 예상된다. 다만 2018년 기준 전 세계 상위 25대 OSAT 기업에 한국이 SFA, 하나마이크론, 네패스 세 곳뿐이라는 점에서 국내 생태계 확보가 시급하다는 업계 지적이 나온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생태계 조성 차원에서 OSAT 업체들의 성장은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라며 “(후공정이) 반도체 산업 내에서 차지하는 의미도 높아질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