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년 간 가파르게 성장한 네이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다시 한 번 도약의 계기를 맞고 있다.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하면서 네이버의 대표 서비스인 검색뿐 아니라 쇼핑, 결제, 콘텐츠, 클라우드까지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검색을 제외한 사업의 매출 비중이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시가 총액에서도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같은 굴지의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코노미조선’은 검색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한국 1세대 벤처 네이버가 새롭게 쓰고 있는 기업사를 들여다 봤다. [편집자주]

카카오게임즈 계열사가 된 모바일 게임사 넵튠의 정욱 대표부터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운영하는 팀블라인드의 문성욱 대표, 자율주행 플랫폼을 만든 포티투닷 송창현 대표, ‘아기상어’ 열풍을 만든 더핑크퐁컴퍼니 김민석 대표, 모바일 커머스 시장을 개척한 그립컴퍼니 김한나 대표까지…. 국내 스타트업의 전성기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네이버에서 네이버의 성장을 이끌어온 인물이라는 거다. 네이버에서 나온 뒤 창업에 성공해 ‘네이버 마피아’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네이버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DNA를 갖춰 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코노미조선’은 ‘네이버 1호 임원(창업 멤버 제외)’으로 네이버의 초창기 성장을 이끌고, 2018년 창업해 채팅형 웹소설 플랫폼 ‘채티’를 만들어낸 최재현 아이네블루메 대표에게 최근 전화 인터뷰로 이에 대해 물었다. 네이버부터 우아한형제들, 클래스101, 채널코퍼레이션 등 다양한 스타트업을 거친 천세희 그로우앤베터 대표도 2월 9일 만나 네이버가 ‘스타트업 사관학교’가 된 비결을 물었다.

최재현(왼) 아이네블루메 창업자 겸 CEO 전 네이버 이사,전 네이버 부문장·기획본부장·미국법인장 천세희 그로우앤베터 창업자 겸 CEO 전 네이버 리더, 전 한국맥도날드 팀장, 전 우아한형제들 이사, 전 클래스101 비즈니스총괄, 전 채널코퍼레이션 COO

네이버에서 어떤 일을 했나.

최재현 “제일기획에 있다가 2000년 네이버에 합류했다. 15년 동안 네이버에서 부문장·기획본부장·미국법인장 등을 거쳤다. 이해진·김범수 창업자가 만들었던 네이버컴 초기 문화를 겪었다. 두 사람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고 공통분모가 있다. 네이버의 초기 문화가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천세희 “2005년 말 네이버에 합류했다. 프리랜서로 일할 때에 비해 연봉이 반 토막 났는데도 네이버의 서비스와 비즈니스 환경, 수평적 조직 문화가 좋아 뛰어들었다. 네이버의 성장세가 어마어마해 매일 한계를 극복하는 기분이었지만, 뜨겁게 일하고 훌륭한 역량을 갖추는 데 최고의 회사였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도 생각한다. 메타(옛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의 말처럼, ‘로켓 뒷좌석에 탄 것’ 같았다.”

네이버는 어떤 기업인가

최재현 “남과 경쟁해 파이를 빼앗아오는 것에 집중하는 기업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기업이다. 네이버는 어떤 가치를 만들고 어떻게 소비자에게 인정받을 것이냐에 집중한다. 네이버에 있을 때 효율적인 조직 운영이나 비용 절감, 경쟁사에 비해 돋보이는 마케팅 활동보다 어떻게 이용자들을 만족시키고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천세희 “극강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어디에 포커싱해야 할지 알고 있다. 직원들에게 성취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기업이다. 직원들은 허허벌판에서 무언가를 만들며 성취감을 느끼고, 목표를 위해 큰 희생을 하기도 한다.”

네이버의 조직 문화는 어떠한가.

최재현 “굉장히 수평적이다. 누구든, 어떤 말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보장돼 있다. 윗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문화가 자유로운 아이디어나 창의성을 발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어떤 사안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여러 목소리가 있었지만, 결정된 일에 대해서는 한마음으로 일을 진행했다. 대기업의 좋은 점은 받아들였겠지만, 좋지 않다고 느끼는 점은 배우지 말자는 분위기가 저변에 깔려 있었다.”

천세희 “직원 한 명 한 명의 정체성이 보이는 기업이다. 예를 들어 영화 담당자에게 ‘요즘 어떤 영화가 좋아?’라고 물으면, 순식간에 여러 개의 작품을 추천해줬다. 각각의 팀에 덕후들이 있고, 자기가 몸담고 있는 서비스를 사랑하고, 토론하는 걸 좋아했다. 개인의 역량과 취향이 명확하고,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쿨(cool)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네이버는 굉장히 실용적이고 성과주의적 회사여서, 차별 없이 오직 성과 위주로 직원을 평가한다. 조직의 상단부터 말단까지 모두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이해진 창업자는 어떤 사람인가.

최재현 “이해진 창업자는 굉장히 겸손하고, 권위적이지 않은 스타일이다. 윗사람 눈치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줬다. 한번은 이해진 창업자가 회의하다가 예약한 시간을 초과해 회의실을 사용한 적 있었는데, 다음 시간을 예약한 직원들이 ‘나와달라’고 하자, 말없이 일어났다. 또 다른 사례로는 말단 직원이 이해진 창업자에게 사업에 대해 브리핑한 적 있었는데, 발표가 끝난 뒤 직원이 그에게 ‘누구시냐’고 물은 적 있다. 그만큼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든 거다. 앞서 대기업을 다녔던 입장에서 이 문화가 상당히 파격적이라고 느껴졌다.”

네이버 출신 창업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최재현 “당시 네이버에 합류했다는 자체가 새로운 분야나 성장하는 곳에 뛰어드는 성향이 있음을 뜻한다. 또 이들이 네이버에서 배운 성장 DNA를 실현한 것이라고 본다. 네이버 출신들은 도전을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다. 이해진 창업자부터가 실패에 대해 절대 질책하지 않았다. 의미 있는 도전을 강조하고, ‘정해진 것과 보장된 것은 없다’는 전제를 내세웠다.”

천세희 “성취와 성장의 기쁨,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경험이 창업으로 연결됐다고도 생각한다. 네이버에서 일하며 내 분야를 찾을 수 있었고 일을 잘하는 법을 배웠고 좋은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이 창업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창업할 때도 네이버에서 일한 게 도움됐나.

최재현 “그렇다. 어떤 천재적인 기획자도 다수의 이용자를 앞서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IT 서비스는 이용자와 호흡하면서 시장에서 진화하며 재창조되기 때문에, 본인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버릴 수 있는 자질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해진 창업자는 이 자질을 갖췄으며, 모두가 열린 마음을 갖고 앞만 보고 달려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줬다. 어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네가 지난번에 이런 말을 했잖아’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성공하게 할까’ 같은 미래 지향적인 사고를 갖게 도왔다. 네이버 출신 창업자들이 그런 DNA를 전수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천세희 “현재 스타트업 창업가들이나 벤처캐피털리스트 중에 네이버 출신이 매우 많다. 모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각 분야에서 도전하고 있다. 그게 서로에게 자극도 되고, 업무적으로도 도움된다. 네이버에서 ‘운영 능력’을 배운 것이 창업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창업은 ‘속도’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체력’도 중요하다. 네이버에서 운영을 잘하는 법, 지표를 잘 보는 법,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잘 다루는 법을 배웠다. 현재 창업 아이템인 ‘스타트업 중간관리자들을 위한 컨설팅과 교육 서비스’도 네이버에서 배운 걸 상품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많은 기사는 이코노미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Part 1. 사내 벤처에서 시총 4위 기업으로

· 한국 기업史 새로 쓰는 1세대 벤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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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네이버 대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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