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업계 1위 넥슨이 김정주 창업주의 사망으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넥슨은 최근 한국의 ‘디즈니’를 표방하며 공격적인 지식재산권(IP) 투자를 진행해 왔으나, 김 창업주 사망으로 추진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 창업주는 생전 자신의 자서전에서 “디즈니에 제일 부러운 건 디즈니는 아이들을 쥐어 짜지 않는다는 것이고, (아이들은)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디즈니에게 돈을 뜯긴다”라며 “넥슨은 아직 멀었다. 누군가는 넥슨을 죽도록 미워한다. 디즈니의 10분의 1이라도 따라가고 싶다”라고 했다.
김 창업주의 이런 견해는 한국 게임 이용자가 가진 기본적인 생각에 기인한다. 한국 게임 이용자에 있어 게임 회사는 게임에 대한 즐거움도 주지만 때론 결제를 유도하는 미운 대상이라는 것이다. 국내 게임 업계의 주된 수익모델인 ‘부분유료화’를 처음 도입한 회사가 넥슨이라는 점에서 과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김 창업주는 돈을 벌면서도 사랑받는 디즈니 같은 기업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혀왔고, 최근 이를 위한 IP 투자에 열을 올려왔다.
지난해 6월 넥슨은 미국의 영화·드라마 제작사인 AGBO에 6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2017년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 등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로 세계적인 감독 반열에 오른 루소 형제가 설립한 제작사다.
이에 앞서 지난해 3월 넥슨은 총 1조원을 일본의 반다이남코홀딩스, 세가사미홀딩스, 코나미홀딩스에 투자했다. 반다이남코는 ‘건담, 드래곤볼’, 세가사미는 ‘소닉’, 코나미는 ‘유희왕, 메탈기어솔리드’ 등의 IP를 보유하고 있다.
일련의 투자는 넥슨이 글로벌 슈퍼 IP를 보유한 회사와 함께 영상 콘텐츠 제작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투자를 주도한 닉 반 다이크 넥슨 필름&텔레비전 총괄은 “영화와 드라마가 게임 사업의 수명을 늘리고, 더 높은 게임 참여를 촉진하는 것이 입증됐다”라며 “AGBO와 함께 영화, 드라마, 게임, 캐릭터 상품 등의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라고 했다. 반 다이 총괄은 디즈니 출신의 영상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넥슨은 지난해 10종 이상의 슈퍼 IP를 개발하고 육성하겠다는 경영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지속적인 연구와 과감한 투자에도 집중할 계획을 전했다. 이정헌 넥슨 대표는 “글로벌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굉장히 많은 혁신과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생겨나고 있다”며 “게임만 고집하면 안 되고 도태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IP를 게임에 한정하지 않고 폭넓게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김 창업주의 사망으로 넥슨이 목표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변화가 추진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업계에서는 창업주와 관계 없이 넥슨이 계획한 대로 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인이 넥슨을 디즈니와 같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바꾸려고 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라며 “이미 투자 방향이나 전략이 잘 수립돼 있고, 기존 고인이 맡고 있던 업무 역시 넥슨 내부의 인재들이 잘 수행하고 있는 만큼 넥슨이 설정한 목표가 하루 아침에 뒤바뀐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