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브레인의 AI 민달리가 그린 NFT 작품 ‘달나라로 가는 검은 호랑이(Black tiger to the moon·왼쪽)’와 ‘세계의 왕 검은 호랑이(My tiger is the king of the world·오른쪽)’. /카카오브레인 제공

두 작품의 이름은 각각 ‘달나라로 가는 검은 호랑이(Black tiger to the moon)’와 ‘세계의 왕 검은 호랑이(My tiger is the king of the world)’다. 왼쪽 작품은 달까지 닿을 듯 말 듯 한 길 위에 호랑이가 서서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추상화처럼 그렸고, 오른쪽 작품은 단순하지만 호랑이의 표정만으로 왕의 근엄함을 표현했다.

두 작품을 그린 작가의 이름은 ‘민달리(minDALL-E)’, 카카오의 인공지능(AI) 전문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AI 모델이다. 사람은 작품을 묘사하는 영어 텍스트(작품명)를 명령하기만 했을 뿐, 명령에 맞는 창작은 100% 민달리가 수행했다.

최근 카카오브레인은 2022년 검은 호랑이의 해를 맞아 이런 방식으로 99명의 요구사항을 각각 반영한 99종의 검은 호랑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카카오의 대체불가능한토큰(NFT) 전문 계열사 그라운드X를 통해 NFT 작품으로 발행, 99명의 소유자에게 각각 주어졌다. ‘구름과 해가 뜬 보랏빛 하늘 위에 앉은 호랑이(Tiger sitting on violet sky with cloud and sun)’ ‘은하 속 포효하는 사이버펑크 검은 호랑이(Cyberpunk black tiger roar in galaxy)’처럼 구체적인 명령에 충실한 결과물도 내놓았다.

카카오브레인의 AI 민달리가 그린 NFT 작품 ‘구름과 해가 뜬 보랏빛 하늘 위에 앉은 호랑이(Tiger sitting on violet sky with cloud and sun·왼쪽))’와 ‘은하 속 포효하는 사이버펑크 흑호랑이(Cyberpunk black tiger roar in galaxy·오른쪽)’. /카카오브레인 제공

카카오브레인 관계자는 “이번 이벤트를 시작으로 민달리의 NFT 창작 활동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라며 “그라운드X와의 또 다른 컬래버레이션(협업) 결과물도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아직 이벤트 성격의 무료 NFT 발행만 하고 있지만 NFT거래소에서 작품이 인기를 얻을 경우 해외 사례처럼 수익 활동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브레인은 인간의 트렌드에 구애받지 않고 신선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의성을 AI 화가 민달리의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일두 카카오브레인 대표는 미술작품을 그리는 AI, 이르바 ‘AI 화가’가 AI가 인간 수준의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작품의 인기 요소인 ‘내러티브(서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NFT 작품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에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비플의 ‘매일: 첫 5000일’ NFT는 6930만달러(약 830억원)에 팔려 화제를 모았다. /비플

지난 23일 밤 카카오의 음성 소셜미디어(SNS) ‘음(mm)’으로 진행된 토크쇼에서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가 “앞으로 예술은 내러티브의 시대다. NFT 거래소에서 팔리는 걸 목표로 한다면 작품에 내러티브를 갖춰야 할 것이다. 약 830억원에 팔린 비플(디지털 아트 작가)의 작품 ‘매일: 첫 5000일(Everydays-The First 5000 Days)’은 작가가 5000일 동안 매일 꾸준히 1개씩 그린 그림을 한데 모았다는 내러티브를 가진 덕분에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라고 말하자, 김 대표는 “AI 모델은 내러티브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AI가 창의성을 가졌다는 내러티브를 내세울 수 있다”라고 답했다.

카카오브레인은 민달리에 창의성을 구현하기 위해 이미지와 그에 대응하는 텍스트 세트(조합) 1400만개를 학습시켰다. 슈퍼컴퓨터를 기반으로 연산 성능을 크게 높인 ‘초거대AI’ 모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검은 호랑이 그림처럼 자연어(인간이 쓰는 언어)로 명령한 내용에 맞는 그림을 그려주고, 그림을 보고 알맞은 제목과 설명을 다는 것도 가능하다.

CJ올리브네트웍스의 AI '에어트'가 채색한 '월하 2021'. /웹사이트 캡처

민달리 수준으로 고도화한 AI 모델이 아니더라도, 기존 예술작품에 변주를 주는 식으로도 AI의 NFT 창작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1일 두나무의 NFT 거래소 ‘업비트 NFT’에선 류재춘 화백의 수묵산수화 작품 ‘월하(月河)’를 재창조한 ‘월화2021′ 200개 한정판이 개당 0.014비트코인(당시 시세로 약 100만원)에 발행되자마자 완판됐다. 월하의 재창조는 CJ올리브네트웍스가 개발한 AI ‘에어트’를 통해 이뤄졌다. 에어트는 월하 원작에 어울리는 채색 작업을 맡았다.

해외에선 지난해 12월 스페인에서 개발된 AI ‘보토’의 작품 4점이 NFT로 발행돼 약 11억원에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3월 휴머노이드(인간형) AI 로봇 ‘소피아’가 아예 로봇팔로 붓을 잡고 인간 화가와 함께 그린 작품이 NFT로 발행, 68만8888달러(약 8억원)에 판매됐다. 소피아는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란 발언으로 유명해진 홍콩 핸슨로보틱스의 로봇이다.

AI 로봇 소피아의 자화상. /유튜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