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해 12월 31일 애플리케이션(앱) 마켓 ‘타이젠 스토어’를 폐쇄했다. ‘타이젠’은 삼성의 자체 운영체제(OS)다. 타이젠 스토어에서 앱을 다운로드하거나 업데이트하는 것이 영구 중단됐다. 타이젠 스토어를 이용할 수 있었던 타이젠 스마트폰은 인도 등 저가 시장을 공략해 내놓은 삼성Z1, Z2, Z3, Z4였다. 2017년 ‘삼성Z4′를 마지막으로 타이젠 스마트폰을 출시하지 않았던 삼성전자가 앱 마켓을 접는 것은 예상된 절차라는 평가가 나온다.
12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삼성의 자체 OS인 타이젠은 ‘구글 안드로이드’ ‘애플 iOS’의 대항마로 2013년부터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디지털카메라 OS로 활용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용 OS 종속을 막기 위한 취지로 시작된 타이젠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타이젠을 적용한 제품은 스마트TV, 스피커, 에어컨, 모니터 등 일부 가전제품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해 5월 구글 최대 규모의 개발자 콘퍼런스인 ‘구글 I/O 2021′에서는 삼성전자와 구글의 새로운 스마트워치용 OS인 ‘웨어 OS’가 전격 공개됐다. 그간 갤럭시워치에서만큼은 자체 OS인 ‘타이젠’ 적용을 고집해 온 삼성전자가 이 시장에서마저 구글에 주도권을 넘긴 것이다. 웨어 OS는 그해 8월 전 세계에 출시된 삼성 ‘갤럭시 워치 4′에 적용됐다. 삼성 측은 구글 안드로이드로 구동되는 갤럭시 스마트폰과의 매끄러운 연동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사용성을 끌어올려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스마트워치에서도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무게 추가 기운 만큼 차세대 갤럭시 워치에서 다시 타이젠을 적용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타이젠 쇠락의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안드로이드와 iOS를 깰 만한 차별화 포인트의 부재다. 앱 개발자들이 외면하니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고질적으로 따라다녔다. 인도 현지 매체 타임스오브인디아는 “삼성 스마트워치의 주된 문제는 타사(안드로이드)에서 쓸 수 있는 앱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라고 했다. 삼성으로선 주력 제품이 아닌 중저가, 스마트워치 등 비주류 제품군 중심으로 타이젠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역설적으로 타이젠을 주류로 끌어올리지 못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하드웨어 중심의 조직 구조와 인력으로 구성된 삼성이 소프트웨어 시도를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라면서 “타이젠 상용화 당시 이미 안드로이드·iOS가 스마트폰 생태계를 꽉 잡고 있었던 만큼 스마트 워치든 다른 시장을 선제적으로, 창의적 관점에서 뛰어들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삼성은 그런 시장이 기기를 많이 팔 수 있는 승부처라고 판단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스마트폰 등 기기 중심이던 무선사업부의 이름을 MX((Mobile Experience·모바일 경험)사업부로 바꿨다. 그러면서 스마트폰부터 스마트워치, PC 등 모든 기기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갤럭시 생태계를 통해 소비자에게 최적의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은 이달 초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전시회 ‘CES 2022′에 참석해 “소비자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기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한 혁신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라면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위한 투자는 지속하고 있으며, 내실을 다지고 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자체 소프트웨어를 내세우기보다는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타사와의 협업 등을 통해 기기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스마트 가전의 경우 아직 구글·애플의 양강 구도가 정립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볼 만한 시장이라고 보고 있다. 김종기 산업연구원 신산업실장은 “TV, 가전 등의 글로벌 스마트홈 시장은 스마트폰과 달리 삼성전자가 잡고 있기 때문에 연결성을 내세워 타이젠 생태계를 넓혀나갈 수 있다”라고 봤다.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는 “OS 같은 소프트웨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concept)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면서 “스마트 가전 시장에서라도 타이젠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돈뿐만 아니라 생각, 사람에 대한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