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의 네이버, 카카오 본사(왼쪽부터). /조선DB

국내 최대 플랫폼 기업 네이버, 카카오(035720)가 올해 초기 단계 스타트업 50곳에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네이버는 인공지능(AI), 메타버스(현실 세계를 가상으로 구현)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에, 카카오는 유망한 플랫폼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이 눈에 띄었다.

31일 기준으로 네이버의 스타트업 양성조직인 ‘D2SF(D2 스타트업 팩토리)’, 카카오벤처스가 올해 시드(seed money), 프리 A(Pre-A), 시리즈A(Series A) 단계에 투자한 기업은 각각 27개, 23개(중복 투자 제외)였다. 스타트업 투자는 일반적으로 시드 단계를 거쳐, 투자 회차나 금액에 따라 시리즈A, 시리즈B, 시리즈C 순으로 추가 투자가 진행된다.

시드는 이름 그대로 아이디어라는 씨앗만 있는 창업 1년 이내 극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최대 5억원 정도를 투자한다. 시리즈A는 시드 투자를 통해 아이디어를 시제품 또는 베타(시험)서비스화해 내놓는 단계에서 받는 투자다. 이 단계에서 역시 매출 같은 실적은 없는 상태다. 몇천만원의 시드를 받은 뒤 시리즈A 투자를 받기 전 3억~5억원을 받는 단계를 프리A로 세분화하기도 한다.

D2SF가 투자한 27개사 가운데 9곳은 AI 관련 기술이 있는 스타트업이었다. 투자 기업 3곳 중 한 곳 꼴이다. AI 번역업체(세븐포인트원, 시드)부터 AI가 추천·제조해주는 신발(크리스틴컴퍼니, 시드), AI 작곡(포자랩스, 프리A), 음식물 분석(누비랩, 시드) 등 적용 범위는 다양했다. AI 지식 플랫폼인 썸테크놀로지스와 AI 물류를 하는 테크타카라는 업체의 경우 카카오벤처스와 공동으로 투자가 진행되기도 했다.

3차원(3D),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올해 정보기술(IT) 업계 최대 인기 키워드로 떠올랐던 메타버스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으로의 투자 역시 두드러졌다. 버추얼플로우·플라스크는 각각 고품질의 3D 콘텐츠를 쉽게 제작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했고, 픽셀리티게임즈는 VR 환경에서 다수의 유저가 실시간으로 인터랙션(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커머스 분야의 리콘랩스는 AR 커머스 솔루션, 지이모션은 패션 원단 재질·패턴 변화를 3D로 실감나게 구현하는 시뮬레이션 엔진으로 각각 투자받았다.

반면 카카오벤처스는 기술 자체보다는 유망 플랫폼에 주로 투자했다. 23건의 투자 중 12건이 플랫폼 스타트업이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검색 플랫폼인 키노라이츠(시드), 온·오프라인 그룹 운동 플랫폼 버핏서울(시리즈A), 4050 패션 플랫폼 ‘퀸잇’을 운영하는 라포랩스(시리즈A), 뉴스레터 플랫폼 뉴닉(시리즈A), 프랜차이즈 운영관리 플랫폼 외식인(프리A) 등이 이름을 올렸다. 장례 플랫폼인 고이장례연구소도 카카오의 시드 투자를 받았다.

공통적으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디지털 치료 등에서의 유망 스타트업을 육성했다. 치매 전 단계로 불리는 경도인지장애 환자들의 인지 능력을 개선할 수 있는 디지털 프로그램 ‘메타기억교실’을 개발한 이모코그에 두 회사 모두 투자했다. 이외에도 네이버는 데이터 기반으로 개인에 맞는 운동을 처방해주는 피트에, 카카오는 AI 수면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이슬립 등에 각각 투자를 단행했다.

스타트업 투자 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시드, 프리A, 시리즈A 단계 스타트업으로 흘러간 돈은 전체 1245건, 3조1747억원에 달한다. 2조1042억원(1351건)이 투자됐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50%가 넘게 늘어난 규모다. 평균 투자 유치 금액 역시 지난해 15억6000만원 규모에서 올해 25억5000만원 수준으로 10억원가량이 늘어났다.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유동성이 좋아진데다 ‘쿠팡 성공신화’ 등으로 좋은 스타트업에 일찌감치 투자해 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투자자 수요가 늘고 있다”라면서 “투자자가 스타트업을 고르는 것이 아닌, 스타트업이 자신들의 비전에 맞는 자금을 들일 수 있게 되는 등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양상환 네이버 D2SF 리더는 “새해에도 초기 기술 스타트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스타트업 성장 단계에 맞춰 체계적으로 성장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