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 현판.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년 구글, 애플, 넷플릭스 등 외국계 플랫폼 공룡에 대한 법적 잣대를 더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23일 밝혔다.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수수료 등 사업자 간 거래 시 발생할 수 있는 '갑질'을 방지한다는 게 골자다. 구글과 애플에 대해서는 올해 세계 최초로 앱마켓 사업자의 인앱결제 강제를 금지하도록 손질한 법안 적용을 본격적으로 나서는 한편, 망 사용료로 국내 기업과 소송을 벌이는 넷플릭스에 적용할 수 있는 법안 마련에도 나서기로 했다.

이처럼 방통위가 내년 법제 정비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힌 배경은 미디어 시장 환경이 급변한 데 따른 것이다. 낮은 접근성과 편리함을 무기로 급격하게 성장한 온라인플랫폼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한 비대면 확산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영향력을 키웠다. 확대된 영향력에 맞는 사회적 책무를 져야 한다는 게 방통위의 판단이다.

최성호 방통위 사무처장은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제도로는 여러 가지 산업 육성, 이용자 보호를 위해 미흡한 측면이 많다"라며 "앞으로는 기존 제도보다는 새로운 법제로서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판단해 새로운 제도를 정립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방향으로 업무 중점을 잡았다"라고 말했다.

구글 등 애플리케이션(앱) 마켓 사업자가 특정 결제 수단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구글 갑질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모습. /연합뉴스

◇ 구글·애플 인앱결제 갑질 엄격 대응

방통위는 구글·애플 등 앱마켓 사업자가 국내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사에 최대 30% 수수료율의 인앱결제 사용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9월 세계 최초의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 시행 후속조치로, 법 위반 행위(인앱결제 강제 행위)의 유형과 판단 기준, 위반에 대한 처분 등을 규정하는 하위법령(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년 3월까지 확정하고 시행한다.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은 '앱마켓 사업자가 특정한 결제방식을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한 사업자엔 매출(한국 사업 기준)의 최대 2%를 과징금으로 물린다. 방통위가 마련 중인 하위법령의 내용은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 구글과 애플의 '편법'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인앱결제 외 결제수단을 마련하면서도 여기에 인앱결제(10~30%)와 비슷한 6~26%의 수수료율을 매겼다. 업계는 구글이 사실상 인앱결제 정책을 유지하는 편법을 부린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회에서 법안 통과를 주도한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구글의 이런 행위에 꼼수 우려가 있다고 비판하고 방통위가 하위법령을 통해 철저히 규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방통위는 지난달 17일 공개한 하위법령 초안에 '수수료 등으로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제한을 부과하는 행위'도 법 위반 행위에 포함시킨 후 보완하는 중이다. 아예 인앱결제 정책을 바꾸지 않고 있는 애플에 대해서도 방통위는 처분을 위한 법적 근거를 하위법령에 담을 예정이다.

방통위는 하위법령 시행 후 내년 하반기에 앱마켓 사업자가 실제로 법을 준수하는지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위반 행위 발견 시 엄격히 처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앱마켓 사업자가 자사 정책을 통해 인앱결제를 직접적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앱마켓에 특정 앱의 등록을 거부하거나 심사를 지연하거나 이미 유통 중인 앱을 삭제하는 등의 '새로운 유형의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는 데도 방통위가 적극 나서기로 했다. 방통위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국내 앱 개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발사의 37.8%가 이런 '새로운 유형의 불공정 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방통위는 또 과도한 수수료, 검색 알고리즘 조작 등 플랫폼 입점업체에 대한 플랫폼 사업자 갑질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법(온플법)' 제정을 추진한다. 온플법은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안)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전혜숙 의원안) 두 군데에서 각각 법안이 발의돼 입법 추진 중이다. 이 중 전 의원안은 방통위가 주무부처로서 국회 법안 통과 후 법을 시행하게 된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 마련된 '지옥' 체험존의 넷플릭스 로고 모습. /연합뉴스

◇ 방통위도 넷플릭스 저격… '망 사용료' 실태조사

방통위는 이날 망 이용 관련 실태조사 근거를 마련하고, 부당한 차별, 조건부 금지 등을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기존 TV로 대표되던 콘텐츠 소비 시장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빠르게 넘어가면서 '망 사용료'에 대한 논란이 화두로 떠올랐다.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국내 OTT 서비스 이용률은 36.1%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66.3%로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실내 활동이 늘어나는 와중에 넷플릭스 등 해외 OTT들이 적극적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한 데 따른 것이다.

넷플릭스 등 해외 콘텐츠사업자(CP)가 승승장구하면서 이들이 유발하는 트래픽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에 인터넷사업자(ISP)들은 국내 인터넷망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CP와 ISP의 갈등은 결국 소송전으로 비화했다. 넷플릭스는 2019년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초기 크게 주목받지 못했었지만,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적정한 망 이용대가 지급 이슈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국회, 정부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까지 압박에 나서면서 넷플릭스는 사면초가에 놓인 상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도 넷플릭스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넷플릭스는 본사 정책총괄 부사장까지 방한해 설득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국회에서 망 사용료 부과 법제화를 추진 중인 만큼 내년 중 넷플릭스를 직접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법안 마련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상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부의장을 비롯, 이원욱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더불어민주당), 김영식 의원(국민의힘), 양정숙 의원(무소속) 등 여야를 막론하고 관련 법안 발의가 줄을 이었다. 국회 과방위 소속 의원들 대부분이 망 사용료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법안 통과 속도도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