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의 올해 누적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60% 이상 증가하는 등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회사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의존을 낮추는 ‘키(key)’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7일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파운드리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IC)의 올해 누적 매출은 5423억원, 누적 순이익은 1282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2.69%로 큰 변화가 없었으나, 이익은 62.14% 크게 늘었다. 올해 성적은 지난해 전체 순이익 933억원을 3분기 만에 뛰어넘는 것이기도 하다.
올해 분기당 430억원 가량의 순이익을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SK하이닉스시스템IC의 최종 순이익 규모는 1500억원 이상이 유력해 보인다. 766억원을 기록했던 2019년과는 비교할 경우 두 배쯤 성장한 것이다.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지난 2017년 7월 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 사업 강화를 위해 관련 사업부를 분사해 설립한 자회사다. 8인치(200㎜) 웨이퍼(반도체 원판)에 1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으로 이미지센서(CIS),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전력반도체(PMIC),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 등을 주로 만든다.
8인치 웨이퍼 공정은 최근 기술경쟁이 치열한 12인치(300㎜) 미세공정과 다르게, 사양 공정으로 분류돼 왔다. 또 다른 말로는 성숙(레거시) 공정으로 불린다. 그만큼 기술 발전 여지가 적고, 이미 시장 구조가 굳어져 있다. 보통 반도체업계에서는 웨이퍼 면적이 넓으면 반도체도 그만큼 많이 생산할 수 있어 효율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8인치에 대한 관심이 최근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주가가 다시 오르고 있는데, 각 회사와 용도, 설계에 적합한 맞춤형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됐다. 따라서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의 8인치 웨이퍼 공정은 생산효율보다 얼마나 다양한 반도체를 만들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파운드리 병목 현상이 나타난 자동차 반도체(MCU) 등도 대부분은 8인치 웨이퍼를 통해 생산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대부분이 8인치 웨이퍼에 기반한 반도체를 설계하고 있어 시장성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경쟁사는 국내 기업인 DB하이텍 정도다. 게다가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이나 램리서치, 엑셀리스 등 8인치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들이 지난 2013년부터 장비 생산을 중단, 증설이 쉽지 않아 새로운 경쟁자가 뛰어들 여지도 적다. 반도체업계는 8인치 웨이퍼 반도체의 공급부족이 앞으로 2~3년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
SK하이닉스가 17년 만에 8인치 파운드리 기업인 키파운드리를 다시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키파운드리는 1979년 설립된 LG반도체가 모체로, 1999년 현대전자와 합병하면서 하이닉스반도체 소속이 됐고, 이어 2004년 하이닉스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부문을 매각해 매그나칩반도체로 이름을 바꿔 해외 자본에 매각됐다. 이후 매그나칩에서도 독립해 파운드리 사업만 별도로 전개하고 있다.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최근 중국 우시로 공장 설비를 옮기는 과정에 있다. 1000여개에 달하는 중국 팹리스 공략을 위해서다. 여기에 한국 사업은 키파운드리로 전개한다. 역시 국내 팹리스와의 생태계를 조성, 안정적인 생산, 수요 기반을 확보하는 ‘윈-윈 구조’를 노린다. 두 회사의 생산능력은 SK하이닉스시스템IC 월 10만장, 키파운드리 월 8만~9만장으로, 단숨에 세계 10위 파운드리인 DB하이텍(올 3분기 기준 월 13만8000장)을 넘어선 상태다.
다만 아직 SK하이닉스시스템IC와 키파운드리의 매출이나 영업이익은 SK하이닉스의 주력인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와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또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첨단 공정이 투입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추가 장비 투자 여력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파운드리가 주목받는 건 회사의 매출 구조에 다양성을 심을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주요 레거시 반도체 공급 부족이 예상보다 장기화 양상을 띠는 가운데, 생산 규모를 늘리기도 쉽지 않아 결국 8인치 웨이퍼 파운드리 서비스 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라며 “중국 우시 파운드리 공장에서 추가 투자를 고려하는 등 SK하이닉스는 최근 파운드리 사업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