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운영 중인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ifland)’. /SK텔레콤

SK텔레콤이 연내로 계획했던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의 해외 진출을 연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내로 예정했던 메타(옛 페이스북)의 가상현실(VR) 기기 오큘러스퀘스트 버전 출시도 내년으로 미뤄질 전망이다. 올해 8월 본격적으로 메타버스 생태계 확장을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내년을 기약하며 내실 다지기에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SK텔레콤이 주춤하는 사이 선두주자 네이버 ‘제페토’는 한 걸음 더 달아나는 모양새다. 소프트뱅크, 하이브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며 사업 확장을 위한 ‘실탄’을 마련했다. 그만큼 안팎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이미 제페토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의 대표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제페토에 구현된 구찌 빌라. /제페토 유튜브 캡처

메타버스는 새로운 플랫폼 역할을 통해 급격한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이머전 리서치는 지난해 476억9000만달러(약 56조원) 수준이던 세계 메타버스 시장 규모가 매년 40% 이상 성장해 2028년 8289억5000만달러(약 98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메타버스가 최대 8조달러(약 9400조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 이프랜드, 올해 내실 다지기 집중

4일 SK텔레콤에 따르면 올해 이프랜드 오큘러스퀘스트 버전과 해외 출시는 어려울 것으로 파악됐다. 오큘러스퀘스트의 경우 내년 초, 해외 출시는 내년 하반기에나 이뤄질 것으로 회사 측은 내다보고 있다.

앞서 지난 8월 SK텔레콤은 안드로이드에 이어 이프랜드 iOS 버전을 선보이며 연내 오큘러스퀘스트 버전 추가 출시와 해외 진출 청사진을 밝힌 바 있다. 오큘러스퀘스트는 메타의 자회사 오큘러스가 내놓은 VR 기기로, PC에 따로 기기를 연결하지 않고 헤드셋에서 모든 콘텐츠를 구동할 수 있다.

SK텔레콤이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서 사업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이프랜드 캡쳐

메타버스 플랫폼 후발주자인 SK텔레콤으로서는 스마트폰에 더해 VR 기기 이용자까지 흡수한다면 단기간 내 이용자 수 확대를 꾀할 수 있다. 메타는 오큘러스퀘스트 출하량에 대한 구체적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10월 출시된 오큘러스퀘스트2에 적용된 퀄컴의 칩셋 판매량 공개로 인해 제품 누적 출하량이 1000만대를 넘어섰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연내 출시 계획이 무산되며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많은 사업자들로부터 이프랜드 사업 관련 협력 문의를 받고 있다”라며 “해외 진출은 올해 못하는 게 아니라 내년으로 미룬 것일뿐이다”라고 했다.

애초 계획에 차질을 빚은 SK텔레콤은 올해 이프랜드 내실 다지기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달 SK텔레콤에서 인적분할로 정보통신기술(ICT)·반도체 투자전문회사로 출범한 SK스퀘어는 최근 암호화폐거래소 ‘코빗’과 카카오 계열 넵튠의 자회사인 디지털 휴먼 제작사 ‘온마인드’에 대한 투자를 발표했다. 총 투자액은 1000억원 규모로, SK스퀘어 측은 이번 투자 발표에 대해 “SK 메타버스 생태계 강화 차원이다”라고 설명했다.

코빗이 운영 중인 가상자산거래소 ‘코빗타운’과 이프랜드를 연동해 이용자로 하여금 가상재화를 손쉽게 구매하거나 거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가상인간 기술로 이프랜드 내 아바타 사업 영역 확대도 꾀할 수 있다.

kt 위즈 황재균 선수가 경기 시작 전 네이버제트 플랫폼 제페토 내 메타버스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 라이브 팬미팅을 하고 있다. /KT

◇ ‘이용자만 2.5억명’ 네이버 제페토

네이버는 SK텔레콤보다 3년이나 앞선 지난 2018년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내놓았다. 현재 제페토는 세계 약 20개국에서 서비스 중이며, 이용자 수만 2억5000만명에 달해 ‘아시아 로블록스’로 불리고 있다. 미국 로블록스는 세계 1위 메타버스 기업이다. 제페토의 이용자 약 80~90%가 외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플레이스토어 기준 제페토 애플리케이션(앱)의 누적 내려받기 횟수는 1억회 이상으로, 이프랜드(100만회)와 비교해 10배가량 차이가 난다. 회사에 따르면 서비스 출시 이후 매년 2배 이상 성장을 지속 중이다.

SK텔레콤이 이프랜드를 통해 ‘국내 대표 메타버스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네이버를 겨냥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이제 막 생태계 구성에 나선 이프랜드와 달리, 생태계 구축을 마친 제페토에는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네이버의 메타버스 사업을 맡은 손자회사 네이버제트는 소프트뱅크와 하이브, YG 등으로부터 총 22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선 이번 투자 기준 기업 가치가 1조2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구현된 현대자동차 쏘나타. /현대자동차

네이버제트는 투자 자금을 글로벌 서비스 확대와 인재 채용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실제 이달 초 네이버제트는 제페토 서비스와 브랜드 관련 프로모션 영상을 제작할 모션그래픽 디자이너와 게임 개발자, 프로젝트 매니저 등을 모집 공고를 냈다.

네이버가 제페토를 통해 다른 형태의 플랫폼을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직 시장 초기인 만큼 메타버스라는 플랫폼을 직접 만드는 데 부담을 느낀 기업 등이 자체 플랫폼을 구축하기보다 기존 구촉된 플랫폼을 이용하는 걸 선호하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기업, 대학 등은 제페토를 활용한 회의와 강의 등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