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내년 액정표시장치(LCD) TV의 패널 공급망을 재정비한다. 중국 LCD 패널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그간 패널 가격 협상력이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중국 업체 비중이 낮아지는 만큼 삼성전자는 일본 샤프와 경쟁사인 LG디스플레이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 삼성디스플레이는 대형 LCD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
1일 전자 업계와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 VD(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는 내년 LG디스플레이와 샤프로부터 공급받는 LCD 수량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이는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것으로,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중국 업체와 타국 업체들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다. 현재 삼성전자가 판매하는 전체 TV 물량의 대부분은 LCD TV로, 중국 LCD 비중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TV 매출을 견인하고 있는 미니발광다이오드(LED) TV 네오 QLED도 중화권으로 묶이는 대만 AOU 비중이 높다.
매출 기준으로 15년 연속 세계 TV 시장 점유율 1위 삼성전자의 공급망 변화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게 전자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화권 디스플레이 패널 공급 업체의 힘을 빼기 위한 수단으로 샤프와 LG디스플레이를 활용한다는 계획은 삼성전자가 그만큼 공급망을 수월하게 관리하고 싶다는 의지가 깔린 것이다”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샤프가 대만 폭스콘에 인수된 지난 2017년부터 거래를 중단했지만, 최근 거래를 재개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 역시 삼성전자가 내년 미니LED TV 등에 사용되는 LCD 패널 공급망에서 샤프와 LG디스플레이 비중을 높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삼성전자에 공급한 LCD 패널이 100만대가 채 되지 않았지만, 내년에는 이 숫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샤프는 올해 수십만대에서 내년 500만대 규모로 공급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삼성전자는 TV 출하량 목표를 4500만대 수준으로 잡았다. 이는 올해 예상 판매량과 비교해 동등하거나 다소 낮은 수치다. 다만 패널 수급량은 5000만대 이상을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리드타임(주문부터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 데다 일부 수급에도 차질을 빚은 데 따른 것이다. 처음부터 넉넉하게 재고를 확보해 안정적인 TV 세트 생산을 하겠다는 게 삼성전자 의도다.
옴디아는 삼성전자가 소화할 내년 TV 패널 물량 중 절반 이상은 여전히 중국 CSOT와 BOE가 가져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LG디스플레이의 점유율은 전체 공급망에서 2%쯤으로 추산하고 있다. 약 100만~150만대 수준이다. 국내 업계는 LG디스플레이가 공급하는 물량이 옴디아 예측치보다 2~3배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LG디스플레이 역시 대형 LCD 생산 중단 시점을 가늠하고 있어 삼성전자가 LG 비중을 높인다 한들, 가격 협상력 저하 우려는 여전하다는 시각이 있다. 또 샤프 역시 일본 업체로 분류되지만, 대만계 자본에 인수됐다는 점에서 위험 부담이 없진 않다.
이 경우 삼성전자의 남은 선택지는 전량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공급받는 퀀텃담(QD)-유기발광다이오드(OLED)의 비중을 높이는 것인데, 이 역시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등으로 공급 초기 획기적인 확대는 어려울 전망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달 30일부터 삼성전자 등에 TV용 QD-OLED 패널을 공급한다.
증권가 등에서는 삼성전자가 OLED 패널을 LG디스플레이로부터 공급받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산업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VD사업부가 이제 막 QD-OLED TV 사업을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협력사인 동시에 경쟁사인 LG 제품을 선택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라고 했다. 삼성전자 또한 여러 차례 “LG로부터 OLED를 납품받을 일은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