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자립을 꿈꾸는 중국이 자국 최대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SMIC를 앞세워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첨단 공정의 출발로 꼽히는 7㎚ 공정은 10㎚와 비교해 반도체 면적과 소비전력은 각각 40%, 20% 줄고, 처리 속도 등 성능은 10% 빠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7㎚ 개발을 완료, 2018년부터 7㎚ 양산을 시작했다.
26일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의 보고서에 따르면 SMIC는 올해 하반기 2023년 양산을 목표로 7㎚ 공정 개발에 돌입했다. SMIC는 지난해부터 10㎚ 공정을 개발하고 있는데 10㎚와 동시에 7㎚를 개발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은 파운드리 업계 1위 TSMC, 2위 삼성전자와 비교해 여전히 3년 이상 뒤처진 상태다. SMIC는 삼성전자와 TSMC가 10㎚대 공정을 내놓은 2014년 28㎚ 공정 개발에 겨우 성공했다. 반도체업계는 SMIC의 기술 수준이 삼성전자와 비교해 적게는 3년, 길게는 5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중국 정부의 공격적인 지원을 받는 SMIC가 첨단 공정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기술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실제 SMIC는 28㎚ 공정 개발 후 3년 만에 10㎚대 개발에 성공했고, 올해 14㎚ 개발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SMIC는 지난달 내년 14㎚ 대량 생산을 통해 전 세계 시스템 반도체 수요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14㎚ 이상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지난 6월 “반도체는 전자 산업이 고속 발전하는 원동력이다”라며 “SMIC가 내년 말 중국산 14㎚ 반도체 제품을 양산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영국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토탈텔레콤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토탈텔레콤은 지난달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70%를 소비하는 중국이 내년이면 14㎚ 칩 대량 생산에 들어간다”라며 “중국이 세계 최대 반도체 공급 국가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을 늘리며 SMIC의 첨단 공정 경쟁에 힘을 보태고 있다. SMIC는 지난 14일 상하이 자유무역구에 자본금 55억달러(약 6조4800억원) 규모의 반도체 합작 회사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28㎚ 대량 생산을 위한 공장을 만드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전체 지분의 36.67%가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반도체 산업 육성 펀드가 보유하고 있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은 “중국 정부가 투자금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8억4500만달러(약 2조1800억원)를 지원했다”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SMIC는 신규 반도체 생산라인을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SMIC와 후아홍(Hua Hong) 등 중국 대표 파운드리 업체들은 2023년까지 17개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신설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업계는 신설 생산라인의 절반 이상을 SMIC가 건설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EMI는 이런 영향으로 중국 반도체 업체의 설치 용량이 8인치(200㎜) 기준 지난해 296만wpm(웨이퍼 단위)에서 올해 357만wpm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SMIC를 중심으로 중국 업체들이 첨단 공정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단기적으로 국내 업체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업체의 반도체 기술력이 중국 업체와 비교해 3년 이상 앞선 만큼 고부가 제품 수주 경쟁에서 중국 업체에 밀릴 가능성은 작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이 첨단 공정을 앞세워 반도체 생산량을 늘릴 경우 중국 세트 업체의 주문량이 감소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무서워하는 건 중국 업체들의 첨단 공정 개발이 아닌 전체 반도체 생산량 증가로 인한 반도체 가격 하락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