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24일 미국 신규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하기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테일러 공장에는 첨단 파운드리 공정이 적용된다. 5세대 이동통신(5G), 고성능컴퓨팅(HPC), 인공지능(AI) 등에 활용되는 첨단 시스템 반도체가 생산된다. 테일러 신공장 투자 규모는 170억달러(약 20조원)로, 삼성전자의 해외 투자 가운데 최고 규모다. 신규 공장은 내년 착공에 들어가 오는 2024년 양산을 시작한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텍사스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올해는 삼성전자 반도체가 미국에 진출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로, 이번 테일러시 신규 반도체 라인 투자 확정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라며 “신규 라인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는 물론, 일자리 창출, 인재양성 등 지역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하겠다”라고 했다.
삼성전자가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신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데는 테일러시의 파격적인 세제 혜택 인센티브가 있다. 삼성전자는 기존 공장이 있는 오스틴과 인센티브 수준을 놓고 올해 초부터 지루한 밀당을 이어온 반면 테일러시는 지난 9월 파격적인 재산세 환급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테일러시는 앞으로 10년간 재산세 92.5%, 이후 10년은 90%, 추가 10년은 85%를 보조금 환급 형태로 감면하기로 했다. 추가로 테일러시가 있는 윌리엄슨 카운티도 10년간 90%, 그 다음 10년 85% 세금 감면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런 인센티브를 통해 삼성전자는 향후 20년간 10억달러(약 1조1900억원)의 인센티브를 받을 것으로 추산된다. 20년간 9억달러(약 9000억원) 세금 감면을 제안한 오스틴과 비교해 파격적인 인센티브다.
파운드리 공장 운영에서도 테일러는 오스틴 대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한파로 약 한 달간 오스틴의 전력과 용수 공급이 중단되면서 반도체 생산라인 가동을 일시 중단해야 했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가 입은 손해는 약 4000억원 규모다. 삼성전자가 오스틴이 아닌 테일러에 신공장을 건설할 경우 이런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삼성전자는 기존 오스틴 공장과의 시너지 효과, 반도체 생태계와 인프라 공급 안정성, 지방 정부와의 협력, 지역사회 발전 등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테일러 신공장은 오스틴 공장과 불과 25㎞ 떨어진 곳에 위치해 기존 사업장 인근의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용수와 전력 등 반도체 생산라인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도 우수하다. 테일러시는 삼성전자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제 혜택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시에 텍사스 지역에 있는 다양한 정보기술(IT) 기업들과 우수 대학들의 인재 확보에도 이점이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테일러시 교육구 정기 기부, 학생들의 현장 인턴십 제도 등 인재 양성을 통한 지역사회와 동반성장 효과도 기대된다”라고 했다.
테일러 공장에 들어서는 신규 라인은 평택 3라인과 함께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달성을 위한 핵심 생산기지 역할을 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라인 건설로 ‘기흥·화성-평택-오스틴·테일러’를 잇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생산 체계를 완성했다. 고객사 수요에 대한 보다 신속한 대응과 함께 신규 고객사 확보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미국 투자를 확정하면서 업계 1위 TSMC와의 선두 경쟁은 뜨거워질 전망이다. 앞서 TSMC는 120억달러(약 14조원)를 투자, 미국 애리조나주에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삼성전자는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앞세워 TSMC와의 점유율 격차를 빠르게 줄여나간다는 계획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점유율 55%로 1위, 삼성전자는 17%로 2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테일러 공장에서 첨단 공정을 가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정부가 첨단 공정 도입을 주문한 데다 삼성전자의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 고객사들이 첨단 공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일러 공장은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고 있는 미국 인텔을 견제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인텔은 미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등에 200억달러(약 24조원)을 들여 공장을 짓고 있다. 테일러 공장은 미국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진 기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