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지회장. /본인 제공
네이버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구글 같은 이미지, 그러니까 자유롭게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창의적인 사내 분위기를 가진 회사가 아니에요. 소수의 창업 멤버와 이들에게 인사평가와 보상 지급 권한 100%를 위임받은 100여명의 조직장을 아래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상명하복의 조직입니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지회장

오는 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한성숙 네이버 최고경영책임자(CEO)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러 직장 내 괴롭힘과 개발자 죽음 사건의 책임과 재발 방지 대책을 질의한다. 지난 5월 25일 네이버 지도 서비스 개발팀의 40대 개발자가 상사로부터 괴롭힘과 과도한 업무지시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던 일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조선비즈는 한 대표의 출석을 하루 앞둔 5일 네이버 노조(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공동성명’의 오세윤 지회장과 전화 인터뷰해 괴롭힘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된 네이버의 비민주적인 경영 구조를 진단하고 필요한 재발 방지 대책을 물었다.

공동성명은 전 계열사 임직원 1만여명 중 3000여명(약 30%), 본사 4100여명 중 1700여명(약 40%)이 소속된 네이버 단일 노조다. 2018년 4월 판교 인터넷·게임 업계 최초로 조직됐다. 괴롭힘 사건과 관련해 이달 중순 사측과 단체교섭을 준비 중이다.

◇ 임원이 가해자인데 조사·징계 회사가 알아서

오 지회장은 “사건의 책임자였던 경영진(최인혁 전 최고책임운영자(COO))에 대한 징계 조치는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징계를 결정하는 것도 전적으로 경영진의 권한이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소수의 창업 멤버가 회사의 모든 걸 결정하고 끌고 나가는 시스템 아래에서는 언젠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벌어질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C레벨(최고위급)’ 경영진에 모든 의사결정 권한이 집중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창업자인 이 GIO와 그 아래 한성숙 CEO, 삼성SDS 출신으로 창업 초기부터 합류해 ‘이해진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최인혁 전 COO, 역시 삼성SDS 출신으로 창업 초기부터 네이버에 합류한 박상진 최고재무책임자(CFO),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함께 일하다가 2000년 네이버에 합류한 채선주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 그 외 사내독립기업(CIC) 대표 7명 등 총 12명의 경영진이 이끌고 있다(하단 그래픽 참조).

오 지회장은 “이 구조를 유지하면서 사람만 바꾸는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앞서 한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 한 달 후인 지난 6월 30일 이 GIO는 임직원에게 “더 젊고 새로운 리더가 나타나서 전면 쇄신하는 게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책이다”라며 “연말까지 경영 체계 쇄신을 마무리하라는 이사회의 제안이 맞는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경영 쇄신에 대해선 공동성명과 생각이 같지만, 현재 일각에서 가능성이 거론되는 일부 경영진과 책임리더급의 단순 교체에 그친다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오 지회장의 생각이다.

조선DB

◇ 100명 조직장 손에 달린 4000명 임금

네이버는 C레벨 경영진으로부터 업무 지시·인사 평가·연봉과 보상 수준 결정의 권한 100%를 위임받은 100여명의 조직장(책임리더)이 조직별로 직원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오 지회장은 “직원들 각각의 다음 해 연봉 인상률, 인센티브, 스톡옵션은 공개된 객관적인 평가 기준 없이 모두 조직장의 재량에 따라 결정된다”라며 “직원들은 부당한 지시라고 할지라도 조직장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보통 대기업의 경우 전 직원에 적용되는 연봉 테이블, 가령 ‘연 5%’ 같은 기준에서 직원들 각각의 성과에 따라 차등을 두고 적용한다. 네이버의 경우 직원 개인에게 보장되는 공개된 연봉 테이블은 없다. 그나마 노조 창설 이후 전 직원 임금 총액의 인상률을 매년 노사 협상을 통해 정하고 공개하는데, 이 인상분 총액을 각각의 직원에게 어떻게 배분할지는 조직장의 평가에 달렸다. 임금 총액이 5% 인상돼도 조직장의 평가에 따라 직원마다 0%에 근접할 수도, 10%에 근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센티브(성과급) 역시 마찬가지다. 조직별로 인센티브 총액이 할당되면, 조직장이 부하 직원을 평가해 재량껏 배분한다. 네이버는 조직장 아래 실무진들의 판단·재량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시스템인데, 동시에 보상은 개인별 성과에 따라 크게 차등을 두는 성과주의의 시스템인 셈이다.

오 지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조직장이 누구냐에 따라 직원들의 근무 환경이 크게 달라지고 최악의 경우 지도 서비스 개발팀처럼 직원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괴롭힘이 자행될 수 있다”라며 “고인을 직접 괴롭힌 가해자가 바로 조직장(신모 당시 책임리더)이었단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지도에 이어 내비게이션 서비스도 1등이 되겠다는 회사의 목표, 지난 5월로 다가온 관련 서비스 출시 일정을 무리하게 맞추느라 신 당시 책임리더는 고인을 포함한 부하 직원에게 과도한 업무지시와 모욕적인 언행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고인은 이를 따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 지회장은 “당시 가해자(신 당시 책임리더)가 (전 직장이었던 넷마블에서 네이버로) 이직하기 전부터 관련 소문이 업계에 있었고, 직원들이 이를 문제제기했지만 경영진은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라고 했다. 공동성명에 따르면 2019년 1월 최인혁 당시 COO는 직접 신 당시 책임리더를 회사로 데려왔고, 일부 직원들의 반발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다’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지난 6월 7일 오전 경기 성남시 네이버 그린팩토리 앞에서 열린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노동조합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관계자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오세윤 지회장. /연합뉴스

◇ 1000명이 괴롭힘 당했다는데, 신고는 6건… ”해봤자 손해”

오 지회장은 또 “사전 문제제기는 물론 괴롭힘이 벌어진 후에 필요한 신고 시스템도 미흡한 실정이다”라며 “사내 신고 채널이 있지만 어차피 회사가 접수를 받고 결국 경영진이 징계를 결정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안심하고 이용하기는 힘든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오 지회장은 신고 처리를 노조 동수로 구성된 위원회가 맡는 카카오와 비교하며 “지난해 네이버의 괴롭힘 신고 건수는 6건으로 카카오의 절반에 그쳤다”라며 “네이버가 카카오에 비해 특별히 괴롭힘이 덜해서가 아니라 직원이 안심하고 신고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집계 기간은 다르지만 ‘6건’은 고용노동부 조사와 규모에 큰 차이가 난다. 고용부가 사건 직후인 지난 6~7월 임원급을 제외한 네이버 본사 전 직원 402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982명 중 절반 이상(52.7%)이 ‘최근(당시 기준) 6개월 동안 한 차례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10.5%는 1주일에 1번 이상 지속적인 괴롭힘을 겪었다고 했다. 외부인이 동석한 자리에서 상사에게 뺨을 맞았고 이 가해자는 정직 8개월 끝에 복직했지만 피해자는 끝내 퇴사했던 사례도 있었다.

오 지회장의 지적처럼,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 44.1%는 신고 여부에 대해 ‘대부분 혼자 참는다’고, 6.9%만 ‘사내 상담부서에 호소한다’고 응답했다. 혼자 참는 이유는 ‘대응해봤자 해결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59.9%로 가장 높았다.

공동성명은 실제로 신고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간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조직장이었던 한 임원을 신고한 직원은 본인이 겪은 일을 상세하게 얘기했지만 이를 통해 작성된 보고서에선 문제점이 축소돼 있었고, 오히려 신고자가 대기발령 조직으로 이동한 후 결국 퇴사했다는 것이다. 공동성명은 해당 임원이 초과 근무를 하고 수당을 신청하는 직원에게 ‘돈이 없어서 수당을 신청하느냐’며 면박을 주고 결재 승인하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이런 내용이 고용부의 특별근로감독으로도 확인됐다. 해당 임원은 회사의 징계 없이 여전히 현직으로 근무 중이다.

◇ 고용노동부, 괴롭힘·신고 부실·신고자 불리한 처우 확인

동료 죽음 사건 직후 고용부의 특별근로감독과 별개로 회사와 공동성명도 각각 자체 진상규명에 나섰다. 회사는 사외이사로 구성된 리스크관리위원회가 외부기관에 조사를 의뢰했고 경영진은 조사 결과를 받아 가해자인 신 당시 책임리더를 해임했다. 최 COO는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라며 COO직을 자진 사임했는데 현재 여전히 네이버의 사내이사로서 네이버파이낸셜·해피빈 등 계열사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오 지회장은 “회사보다 노조의 자체 조사 결과가 고용부의 공식 조사인 특별근로감독 결과에 더 근접했음에도 회사는 할 일을 다하지 않았다”라며 “모든 걸 결정하는 경영진의 팔이 안으로 굽은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사진은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그랜드센트럴에서 열린 디지털플랫폼 기업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한 대표는 오는 6일 환노위 국감에도 증인으로 나선다. /연합뉴스

고용부는 사건 두 달 후인 지난 7월 27일 “네이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결과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채널 부실 운영, 신고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를 확인했고 조직 문화와 관련해 전반적인 개선이 긴요하다”라고 결론내렸다.

고용부가 고인과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동료 진술과 일기장 등 자료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인은 직속 상사(신 당시 책임리더)로부터 지속적으로 폭언과 모욕적인 언행을 겪고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의도적으로 배제됐으며 과도한 업무 압박에 시달렸다. 사용자인 네이버 경영진은 괴롭힘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 등 ‘사용자의 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는 이 사건 말고도 네이버가 괴롭힘에 해당하는 사내 신고를 받고도 ‘괴롭힘 불인정’ 처리하고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 등 불합리하게 처리한 사실도 확인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긴급하게 분리한다는 명목으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기존 업무와 무관한 임시 부서로 배치하고 직무를 부여하지 않는 ‘불리한 처우’도 있었다. 고용부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를 다하지 않은 사용자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6항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내려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공동성명이 동료 증언을 토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 당시 책임리더는 회의 중 책상에 보드마카를 집어던지고 직원의 사원증 목줄을 당겼다 놨다 하는 행동을 했는데, 이 때문에 퇴사하는 직원이 많아지자 직원들에게 “이직하면 (중간 관리자인 고인은) 나한테 죽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인력 이탈이 일어나는 와중에 고인은 지난 5월 서비스 출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밤과 휴일 구분 없이 조직장에게 업무 지시를 받고 보고해야 했다고 한다.

◇ “노조 패싱해 온 회사, 이번엔 달라져야 할 것”

공동성명은 사건 직후 회사에 공동 조사를, 징계 결정 직후엔 최인혁 당시 COO를 포함한 책임자나 공범의 징계를 요구하며 피켓 시위와 집회를 벌였지만 회사는 ‘노조 패싱’의 태도로 일관했다. 오 지회장은 “회사에 지속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노사 공동으로 만들어갈 것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이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고용부의 권고, 국정감사 등 회사가 여러모로 눈치 볼 일이 많아진 만큼 이달 협상에선 요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동성명은 이달 중순 노사 단체협약을 진행한다. 임금협약 외 직원의 복지와 근로조건을 다루는 단체협약은 노조 창설 이후 두 번째, 올해 동료 죽음 사건 이후 처음인 만큼 재발 방지 대책을 강하게 요구하겠다는 방침이다.

공동성명은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조치 신설 ▲과도한 업무시간 방지 보강 ▲평가 및 보상 방식 개선 ▲분할·합병·양도·전환배치 시 조치 보강 ▲공통 복지제도 신설 등 5가지를 사측에 요구한다. 구체적으로는 괴롭힘 신고 처리를 위한 ‘카카오식(式)’ 노사 동수 위원회 신설, 시급하지 않은 일에 대한 업무시간 외 연락 금지, 객관적인 인사평가 항목과 연봉·인센티브 지급 기준 마련, 직원별 보상에 대한 충분한 설명 제공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