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에서 한국 업체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BOE는 지난해 전 세계 액정표시장치(LCD) 점유율 1위에 올랐고, 올해 1분기부터는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를 넘어섰다.
하지만 BOE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OLED 기술에서는 여전히 한국에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최근에는 애플의 아이폰13용 OLED 공급에 실패하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그런데 최근 애플로부터 OLED 공급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받으면서 한국 업체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21일 전자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BOE는 최근 애플의 아이폰13용 OLED 패널에 대한 조건부 공급 승인을 획득했다. BOE가 애플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할 경우 내년에 생산하는 일부 제품에 BOE 패널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생산하는 아이폰13에는 이미 계약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OLED 패널이 탑재된다.
대만 정보기술(IT)매체 디지타임즈는 “이번 조건부 승인의 핵심은 애플이 BOE에 기술 수준을 충족할 때까지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라며 “애플이 OLED 공급을 독점하는 한국 업체와 BOE를 경쟁에 부쳐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의도도 포함됐다”라고 했다.
BOE가 애플과의 거래에 집착하는 건 까다로운 애플의 품질 검사를 통과해야 시장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나아가 한국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BOE는 애플 아이폰X에 OLED가 처음 적용된 지난 2017년부터 애플에 러브콜을 보냈는데, 애플이 낮은 수율(생산품 중 양품의 비율)과 성능 문제로 제품 공급을 거절하면서 BOE의 패널 공급은 번번이 불발됐다.
당시 업계에서는 BOE가 애플에 OLED 패널을 공급하기 위해 가격을 삼성디스플레이 OLED의 60% 수준까지 낮춰 제시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애플이 끝내 BOE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3년이 흐른 지난해 처음으로 BOE는 애플 아이폰12용 OLED 패널을 공급하게 됐다. 이마저도 교체용(리퍼비시) 패널로 공급량은 아이폰12 전체 생산량의 5%에 해당하는 900만대에 불과했다.
BOE는 아이폰13용 OLED의 핵심 기술인 저온다결정산화물(LTPO·Low-Temperature Polycrystalline Oxide) 박막트랜지스터(TFT·Thin Film Transistor)와 터치일체 OLED 기술 완성에 여전히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TPO TFT는 OLED 디스플레이의 주사율을 높이면서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한 핵심 기술로 애플이 특허를 갖고 있다. 터치일체 OLED는 터치 기능을 패널에 내장한 것으로, 두 기술을 동시에 구현하는 곳은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유일하다.
애플이 BOE에 아이폰13용 OLED 패널에 대한 조건부 승인 자체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평가도 있다. 애플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요구하는 기술을 구현한 업체라면 어디라도 거래하는 게 공급처 다양화라는 관점에서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BOE에 조건부 승인을 내렸다고 BOE의 OLED 패널이 아이폰13에 무조건 탑재되는 건 아니다”라며 “기술 개발과 양산은 다른 문제로 봐야 한다”라고 했다.
BOE는 OLED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시장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BOE는 현재 중국 청두(成都)와 면양(綿陽)에 6세대(1500㎜×1850㎜) OLED 생산라인을 각각 운영하고 있는데, 내년까지 충칭(重慶)에 6세대 OLED 공장 3곳을 추가로 건설한다. 이렇게 될 경우 BOE의 중소형 OLED 연간 생산능력은 최대 3억4500만대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를 웃돌게 된다.
BOE는 생산량을 늘려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가격을 올리는 방법으로 수익성과 성장성을 잡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OLED 패널이 중저가 스마트폰에까지 적용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 OLED 패널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라며 “BOE의 올해 상반기 OLED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배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라고 했다.
한편 시장조사업체 DSCC는 BOE로 대표되는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가 2025년 전 세계 디스플레이 생산능력의 70%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53%에서 연평균 11.9% 생산능력이 증가하는 것이다. DSCC는 보고서에서 “중국은 이미 2019년부터 LCD를 과반 점유한 상태로, OLED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라며 “OLED 시장에서 따라잡으려는 중국 업체와 지키려는 한국 업체들의 경쟁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