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카 렌더링 이미지.

애플의 자동차 시장 진출로 삼성과 LG 등 전자계열 중심이었던 애플의 국내 협력사가 현대차그룹 등 국내 차 부품사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산업 생태계의 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넘어가면서 시장 환경 자체는 애플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는데 무게가 실린다. 애플이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면 5년 안에 150만대를 팔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시장 진출 선언 이후 7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애플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러다 보니 소문만 무성하다. 올해 들어 이어진 내부 핵심 인력 이탈과 글로벌 완성차 업계와 협업 무산 등 부정적 소식으로 시장 진출 과정이 순탄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 뉴욕에 있는 애플 스토어. /연합뉴스

◇ 애플 車산업 진출, 국내 부품사에 기회?

12일 애플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애플 협력사 중 국내 업체는 13곳으로 집계됐다. 이 중 6곳이 삼성과 LG 계열사다.

삼성 계열사는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로, LG 계열사는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이다. 삼성과 LG 계열사를 제외한 업체들은 SK하이닉스, 포스코, 서울반도체, 영풍그룹, 덕우전자, 범천정밀, 실리콘웍스 등이다.

애플의 국내 협력사는 대부분 주력사업인 스마트폰 관련, 부품 회사들이다. 스마트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카메라 렌즈, 배터리 등이 대표적이다.

애플이 자동차 산업으로 영역을 확대할 경우 국내 차 부품사들이 협력사로 포함될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국내 자동차 부품사 중에는 이미 해외 전기차 업체 등에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이 여럿 있어 기술은 이미 갖춰진 상태다”라며 “애플의 자동차 시장 진출은 국내 업체들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애플은 2014년 자동차 프로젝트인 타이탄을 시작했다. 자동차 업계 안팎에선 전기차를 통해 애플이 자동차 시장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투자회사 얼라이어스 번스타인은 애플이 2025년 안에 전기차를 출시하면 2030년까지 150만대가 팔릴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 산업 진출은 자동차 부품사와 연계될 수밖에 없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전환으로 3만개에 달하는 부품이 절반가량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관측되지만, 제동, 조향 장치 등은 부품사에 기댈 수밖에 없다. 특히 자동차는 안전과 직결하는 만큼 대형 자동차 부품사들이 쌓아온 ‘신뢰도’도 무시할 수 없다. 국내에선 현대차그룹 내 현대모비스와 함께 만도 등이 향후 애플카의 협업 파트너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애플과 끈끈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는 LG 역시 협력사를 늘릴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인터내셔널과 함께 설립한 ‘LG 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이 거론된다.

다만 아직 국내 부품사들이 애플이 원하는 성능을 구현할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지에 대한 품질 의문도 제기된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도 “국내 부품사들은 대부분이 내연기관 관련 부품사로 애플에 납품하기 위해서는 설비투자가 뒤따라야 하는데 준비가 아직 안 됐다고 봐야 한다”라며 “미국 내 친환경 자동차 부품업체가 수천개인데 반면, 우리는 제대로 된 통계도 없는 상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 배터리를 제외한 나머지 (전기차) 부품은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일러스트=박길우

◇ 베일에 싸인 ‘애플카’… 핵심 인력 떠나고 완성차는 외면

애플은 공식적으로 자동차 산업 진출에 대해 인정한 적은 없지만, 몇 차례 이를 암시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올해 4월에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뉴욕타임스(NYT) 팟캐스트 ‘스웨이’와 인터뷰에서 “자율주행차는 로봇이다”라며 “자율주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우리는 애플이 무엇을 하는지 볼 것이다”라고 했다. CNBC는 ‘애플이 자동차나 차량 관련 기술에 대해 작업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쿡 CEO가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면서도 이날 발언은 자율주행차와 관련한 암시적 발언을 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는 애플 특유의 기업 문화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애플은 협력사 등 사업 파트너를 물색할 때 보안을 강조하며 비밀 유지 조항을 어기면 수억달러에 달하는 페널티를 물리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애플이 사업에 대해 속 시원히 밝히지 않고 있어 업계 안팎에선 확인되지 않는 소문만 무성하다. 그러다 보니 핵심 인력 이탈과 완성차 업계와의 협업 무산 소식 등으로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포드는 애플카 프로젝트 운영을 맡았던 더그 필드 부사장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현지에선 애플카 핵심 임원이 포드로 자리를 옮겨 애플의 자동차 사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올해 들어 애플카 프로젝트를 맡았던 핵심인원들의 이탈만 총 4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미국은 동종업계 등으로 이직 시 비밀 유지 조항 등이 엄격하기 때문에 관련 윤리 의식이 높은 편이다”라면서도 “기존 해왔던 일을 다른 회사에서 하는 만큼 기술 유출이 전혀 안 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생산 협력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올해 초 현대차그룹은 물론, 일본 닛산 도요타 등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현대차는 애초 애플카 협력 관련, 풍문이 수면 위로 떠 오른 당시 “다수의 기업과 자율주행차 개발을 협의 중이다”라고 공시했지만, 한 달 뒤 “애플과 자율주행 차량 개발 협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다. 완성차 업계가 애플과 폭스콘의 관계처럼 위탁생산 ‘하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