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8단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을 처음 D램에 적용한 DDR5로 초격차를 이어간다. 10㎚(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공정과 극자외선(EUV) 기술이 적용되는 DDR5는 데이터센터 등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3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학회에서 8단 TSV 기술이 적용된 512GB(기가바이트) DDR5 메모리 기술을 공개하고, 내년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현재 주력인 DDR4 메모리 모듈은 최대 4개의 다이를 쌓는 4단 TSV 기술을 적용하고 있으며, 두께 1.2㎜ 수준이다. 다이는 반도체 물질의 작은 사각형 조각으로, 한 개의 다이에는 한 개의 직접회로가 들어간다. 한 반도체 모듈에 많은 다이가 들어갈수록 성능이 높아진다.
8단 TSV는 이런 4층 구조의 다이를 8층으로 2배 늘린 것이다. 다만 두께는 1.0㎜에 불과한데, 삼성전자는 얇은 핸들링 기술로 다이 사이 간격을 40% 좁혀 전체 면적과 높이를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반도체 공정의 미세화로 고성능과 저전력을 동시에 구현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512GB DDR5는 최대 7200Mbps(초당메가비트)의 전송속도로, DDR4 대비 성능은 1.4배, 속도는 2.2배, 용량은 2배 향상됐으나, 소비전력은 8% 줄었다. 1초에 30GB 용량의 4K UHD(3840×2160) 영화 2편을 처리할 수 있다. 용량과 전송 속도 모두 업계 최고 수준이다.
DDR5는 차세대 D램 규격으로, 지난해 7월 메모리 표준규격을 정하는 JECDEC(Joint Electron Device Engineering Council)에 의해 제정됐다. 빠른 처리속도와 성능, 대용량 등으로 인공지능(AI)나 딥러닝처럼 빅데이터를 요구하는 기술이나 5세대 이동통신(5G)을 활용한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기술과 접목돼 확대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기술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메모리가 필요한데 현재의 DDR4로는 어렵고, DDR5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DDR5 시장은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고 있다. 표준 규격이 제정되고 메모리 제조사도 개발을 얼추 끝냈으나, DDR5 메모리 반도체와 짝을 이루는 중앙처리장치(CPU)가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재 DDR5는 모바일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상용화된 반면, 수요가 큰 PC나 서버 등에선 전환이 지연되고 있다. 최근 메모리 업황 전망이 부정적으로 나오는 이유다.
다만 최근 인텔이 오는 4분기 DDR5를 장착할 수 있는 PC용 CPU 엘더레이크를, 내년 1분기 서버용 CPU 사파이어 래피즈를 내놓기로 하면서 상황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미 지난해 7월 메모리 표준 규격을 정하는 JECDEC가 DDR5 규격 및 표준을 발표했고, 메모리 업체들은 이미 개발을 완료한 상황에서 DDR5를 지원하는 CPU 출시만 기다리고 있다”라며 “인텔의 CPU 개발 둔화가 생각보다 DDR5 전환을 지연시켰는데, 드디어 인텔이 올해 4분기 PC, 내년 1분기 서버에 DDR5를 지원하는 신규 플랫폼 출시 계획을 내놨다”고 했다.
DDR5 D램 가격은 DDR4보다 30% 이상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스포스는 “내년 DDR5가 기존 제품보다 30% 이상 비싼 가격으로 공급될 것이다”라며 “다만 PC OEM 업체들이 DDR5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트렌스포스는 DDR5가 내년에는 주로 상용 PC에, 2023년부터는 소비자용 PC로 확산할 것으로 봤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DDR5 수요에 대해 내년 전체 D램 시장의 10%, 2024년 43%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