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애플의 인앱(자체)결제 강제 정책을 막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이른바 ‘구글 갑질 방지법’이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최종 통과됐다. 해외에선 거대 정보기술(IT) 기업 구글과 애플의 ‘갑질’ 수단으로 지목된 인앱결제 정책을 규제하려는 글로벌 트렌드를 한국이 이끌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법안이 통과되자, 세계 최대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앱) ‘틴더’를 운영하는 미국 매치그룹은 성명을 통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미국 CNBC가 보도했다. 매치그룹은 “오늘의 역사적인 법안(구글 갑질 방지법)과 한국 국회의 대담한 리더십은 공정한 앱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싸움에서 기념비적인 발걸음을 남겼다”라며 “전 세계의 비슷한 법안들이 신속히 통과되길 기대한다”라고 했다.
에픽게임즈·스포티파이 등 IT 기업들도 인앱결제 규제를 주장해왔고 지난달 11일(현지시각)엔 미국 연방 상원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함께 구글 갑질 방지법과 비슷한 ‘오픈 앱마켓 법안’이 발의됐다.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애플을 ‘앱마켓 경쟁 방해’ 혐의로 기소했고, 호주와 일본에서도 규제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업계와 정치권이 구글 갑질 방지법에 주목하는 이유는, ‘앱마켓 사업자가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모바일 콘텐츠 등 제공 사업자로 하여금 특정한 결제 방식을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행위, 모바일 콘텐츠 등의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0조 제1항의 개정 내용 때문이다.
‘앱마켓’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애플 앱스토어 등 앱을 유통하는 플랫폼, ‘앱마켓 사업자’는 이 플랫폼을 운영하는 구글·애플 등 기업을 말한다. ‘특정한 결제 방식’은 인앱결제를 겨냥한 것이다. 인앱결제는 이용자가 앱 안에서 게임 재화·콘텐츠 등의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앱마켓의 자체 결제 시스템을 통하는 방식이다.
‘모바일 콘텐츠 등 제공 사업자’, 즉 앱 개발사는 이용자의 인앱결제 금액의 15~30%를 구글·애플에 수수료로 줘야 한다. 앱 개발사 입장에선 편리하지만 수수료 부담이 큰 결제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강제할 경우 수수료 부담이 높아지고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도 이어져 웹툰·웹소설 콘텐츠를 포함한 모바일 산업이 위축될 거라는 우려가 업계에서 제기된 이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로 국내 기업들이 부담할 수수료는 885억~1568억원 정도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여파로 국내 관련 산업 매출이 연간 약 2조3000억원 감소할 수 있다고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는 주장했다.
애플은 처음부터 인앱결제를 강제했다. 현재 같은 앱이라도 안드로이드 버전보다 iOS 버전에서 유료 서비스 가격이 전반적으로 더 비싼 것도 이 인앱결제 수수료가 반영돼서다. 구글이 오는 10월부터 애플처럼 강제 정책으로 전환하기로 하자 국내에선 규제 움직임이 시작됐다. 규제 법안엔 구글 갑질 방지법이란 별명이 붙었다.
지난해 7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야 통틀어 7개 법안이 발의됐다. 구글의 회유책(정책 시행 연기)과 여야 갈등으로 법안 논의가 지연됐고 한미 통상 마찰 가능성, 공정거래법과의 중복 규제 우려가 제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지난달 31일 국회의 마지막 문턱인 본회의를 통과했다.
구글과 애플은 반발하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시행하는 인앱결제 강제 정책이 한국 법 때문에 변경이 불가피해졌고, 미국 등 다른 국가들도 한국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법을 도입하는 글로벌 도미노 규제의 가능성도 생겼기 때문이다.
구글은 “해당 법률을 준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수주일 내로 관련 내용을 공유할 예정이다”라면서도 “구글플레이 서비스 (인앱결제) 수수료는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계속 무료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개발자가 전 세계 수십억명의 소비자에게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사용된다”라고 항변했다. 플레이스토어에서 유료 서비스를 파는 1% 미만의 앱에 인앱결제 수수료를 거둬야 99% 이상의 무료 앱 운영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게 구글 측의 주장이다.
애플 역시 한국 국회에서 본회의가 열리기 전에 본사 차원의 입장문을 통해 “(인앱결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다른 결제수단으로 상품을 구매한 이용자들을 사기 위험에 노출시키고 개인정보 보호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내 업계는 환호하고 있다. 업계를 대표하는 인기협은 “창작자와 개발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이용자가 보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공정한 앱 생태계가 조정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했다.
다만 아직 방심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앱결제 외 다른 결제수단에도 구글과 애플이 수수료를 매길 수 있다”라며 “다른 결제수단의 수수료를 인앱결제 수준인 30%로 높게 매기는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법을 우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회와 규제당국은 구체적인 규제 방법을 정할 시행령 마련에 들어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