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딜라이트 홍보관의 홍보 부스 모습. /조선DB

삼성전자가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업체 NXP 인수합병(M&A)을 최종 포기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NXP가 삼성전자에 요구한 몸값이 680억달러(약 80조원)로 치솟으면서 부담을 느낀 삼성전자가 다른 회사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5일 삼성전자 소식을 주로 다루는 미국 정보기술(IT) 매체 샘모바일은 “삼성전자는 그동안 자동차용 반도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와 NXP 인수를 검토했다”라며 “그런데 최근 NXP가 인수 금액을 80조원으로 올리면서 삼성전자가 NXP 인수 계획을 사실상 철회했다”라고 전했다.

NXP는 2004년 필립스 반도체 사업부문이 분사해 세운 자동차용 반도체 전문 업체다. 지난해 독일 인피니언에 이어 글로벌 점유율 2위를 기록했는데, 자동차의 각종 장치를 제어하는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와 인포테인먼트 반도체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제조 기반을 둔 자동차용 반도체 회사를 M&A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NXP는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이 있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이다.

하만의 전장 기술을 적용한 삼성전자 디지털콕핏 모습.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자동차용 반도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2019년 NXP 인수를 검토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인수 금액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M&A는 무산됐다. 당시 NXP는 미국 반도체 회사 퀄컴에 제시한 440억달러(약 51조원)를 삼성전자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삼성전자가 NXP 인수를 포기한 가장 큰 이유도 비싼 몸값이다. NXP는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 현상에 힘입어 실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에 따라 시가총액도 전날 기준 62조원에 육박한 상태다. 통상 인수 금액이 시가총액보다 20% 높은 걸 고려할 때 NXP의 몸값은 최소 70조원을 넘게 된다.

NXP가 삼성전자에 인수 금액으로 80조원을 요구하면서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기준 130조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NXP를 인수할 수 있지만, 2017년 인수한 자동차용 전자장치 업체 하만이 9조원 수준인 걸 고려할 때 NXP의 몸값은 터무니 없다는 평가가 내부에서도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삼성전자가 NXP를 인수하면 전장사업에서 경쟁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다”면서도 “몸값이 너무 오른 만큼 쉽게 인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라고 했다.

NXP가 생산하고 있는 전력반도체(PMIC) 모습. /NXP 제공

M&A에 따른 경쟁국의 반독점 심사 리스크도 인수 포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국제 협약에 따라 M&A를 진행하는 기업들은 경쟁국 반독점규제기관의 심사와 승인 절차를 받아야 한다. 반도체의 경우 한국을 포함한 미국, 중국, 영국, 유럽연합, 대만, 브라질, 싱가포르 등 8개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2018년 미국 반도체 업체 퀄컴이 NXP 인수에 실패한 것도 중국 당국이 승인을 연기하는 방법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퀄컴은 위약금으로 20억달러(약 2조3000억원)를 날렸다. 샘모바일은 “삼성전자 역시 NXP 인수 과정에서 반독점 심사 리스크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수년에 걸쳐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등 막대한 추가 비용도 들어갈 수 있어 인수 포기로 눈을 돌린 것 같다”라고 했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스위스 마이크로칩 일렉트로닉스 등을 인수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동차용 반도체 경쟁력을 빠르게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존 업체를 인수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M&A와 관련해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