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미가 올해 2분기 유럽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시장 1위에 올랐다. 또 지난 6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샤오미는 애플은 물론, 삼성전자를 누르며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을 무섭게 위협하던 화웨이가 미국 제재로 스마트폰 사업을 사실상 접은 뒤, 강력한 중국발 돌풍이 다시 불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전략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수년간 선두를 유지해오던 시장 구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최근 샤오미와 삼성전자는 공고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어 샤오미 돌풍이 결과적으로 삼성전자 부품사업의 수혜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또 디스플레이,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의 부품을 만드는 삼성전자 계열사의 성장도 기대된다.
23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샤오미는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을 포함한 전체 유럽 지역에서 2분기 시장 점유율 선두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전체 유럽 지역에서 2위로 밀렸다. 또 샤오미는 올해 6월 17.1% 점유율로, 삼성전자와 애플을 제치고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이는 2010년 창사 이후 첫 1위다.
샤오미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자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오랫동안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군림한 삼성전자와 애플을 누를 ‘제2의 화웨이’로 샤오미가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2분기 휴대폰 출하량이 6000만대라고 밝혔다. 전체 휴대폰 중 스마트폰이 차지하는 비중은 95% 중반으로, 이에 따른 2분기 스마트폰 출하량은 5580만~5760만대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1분기 출하량 7680만대(카운터포인트리서치)보다 약 25% 줄어든 성적이다.
다만 이 같은 출하량 감소는 샤오미의 약진에 따른 부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삼성전자의 견해다. 삼성전자는 “2분기 자체가 스마트폰 사업 비수기인 데다, 부품 공급 부족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생산 차질 등으로 스마트폰 판매가 전 분기보다 감소했다”고 했다.
시장에서도 삼성전자 스마트폰 판매 부진은 이미 예상됐다는 반응이다. 2분기가 계절적 비수기라는 점에 더해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의 여파로 2분기 스마트폰 출하량은 1분기에 비해 20~30%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이미 나왔던 것이다. 삼성전자 역시 확보한 부품 물량에 따라 스마트폰 생산계획을 축소 조정해 왔다.
삼성전자로서는 샤오미의 약진이 일견 반가운 측면도 있다. 스마트폰 출하량 감소가 이미 예정돼 있던 것이라면, 샤오미 스마트폰 판매 증가는 관련 부품 사업이 성장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어서다.
현재 샤오미는 플래그십(고급형) 스마트폰 대부분에 삼성전자가 개발·생산하는 이미지센서를 적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Z폴드3와 Z플립3 출시 하루 전 샤오미가 선보인 미 믹스4는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가 개발한 상보성금속산화반도체 이미지센서(CIS)인 ‘아이소셀 브라이트 HMX(이하 HMX)’를 장착한다. 현존 CIS 최고 해상도이자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1억800만 화소 HMX는 샤오미가 지난해 2월 출시한 미10 프로에 처음 적용됐다.
삼성전자가 직접 개발한 최신 CIS를 갤럭시 시리즈가 아닌 경쟁사부터 납품한 것은 샤오미 미10 프로가 처음이었다. 당시 레이쥔 샤오미 최고경영자(CEO)는 삼성전자로부터 반도체 웨이퍼(원판) 모형을 선물받았다는 사실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알리기도 했다. 샤오미는 지난해 12월 출시한 미11에도 HMX를 적용했다.
샤오미 미11 프로의 경우에는 삼성전자 아이소셀 GN2라는 이미지센서를 채택하고 있다. GN2는 해상도가 5000만 화소로 HMX의 절반 수준이지만, 초점을 맞출 때 기존 좌우에 상하 위상차를 더해 보다 완벽한 자동 초점을 지원한다. 여기에 샤오미는 미 믹스4의 오디오 시스템 튜닝을 삼성전자의 자회사 하만의 하만/카돈 브랜드에 맡기고 있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의 모바일 주력 D램인 LPDDR5도 플래그십 스마트폰 등에 채용하고 있다.
샤오미는 내년 출시할 차세대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삼성전자가 개발한 2억 화소 이미지센서를 장착한다는 계획이다. 이 이미지센서는 삼성전자 차세대 갤럭시에도 들어간다.
삼성전자와 샤오미의 협력 관계는 삼성전자 ‘비전 2030’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30년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1위를 목표로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을 육성 중인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나 이미지 센서 등 시스템 반도체는 모바일 시장 성장과 함께 발전하기 때문이다. 또 스마트폰 판매 증가는 AP에 반드시 따라붙는 D램과 낸드 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샤오미가 스마트폰을 많이 판매하면 할수록 삼성전자의 반도체 저변도 넓어진다는 의미다.
삼성전자가 화웨이 공백을 채우려는 샤오미를 비롯해 오포, 비보 등에 엑시노스 기반의 중저가 스마트폰 AP 관련 통합칩(SoC) 레퍼런스를 최근 공급했다고도 알려졌다. 이 역시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샤오미 돌풍이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에는 상당한 위협이 될 수는 있지만, 시장 점유율은 상징적인 것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을 만드는 건 결국 출하량이다”라며 “오히려 샤오미 등 후발주자의 약진으로 이들에 관련 부품을 공급한 삼성전자 부품 사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샤오미의 질주로 이득을 보는 건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전자 계열사들도 마찬가지다. 삼성전기는 반도체 회로기판과 MLCC를 주로 생산하는데, 올해 2분기 전체 매출에서 삼성전자 매출액의 변화가 크지 않았음에도 샤오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년 5% 수준에서 14.2%로 급상승했다. 이는 샤오미 스마트폰 판매 증가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샤오미 수혜 기업 중 하나다. 샤오미는 폴더블(접히는) 스마트폰 미 믹스 폴드의 디스플레이를 중국 CSOT에서 납품받고 있다. 하지만 내년 출시할 차기 미 믹스 폴드의 내부 패널(실질적으로 접히는 부위)을 삼성디스플레이에 맡길 예정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폴더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에 저온폴리옥사이드(LTPO)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LTPO 기술은 저온폴리실리콘(LTPS)와 옥사이드 박막트랜지스터(TFT)를 하나의 유리 기판 위에 올린 것으로, 빠른 전자 이동도와 낮은 누설 전류를 추구한다. 이를 통해 배터리 전력 소모를 최대 20%까지 줄인다. 또 LTPO는 재생 콘텐츠에 따라 디스플레이 주사율을 10~120㎐로 조절할 수 있다. 주사율은 디스플레이가 1초에 얼마나 많은 장면을 보여주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로, 숫자가 클수록 화면 전환이 매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