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2시 45분 네이버 스포츠에서 대한민국 대 이스라엘의 도쿄올림픽 야구 본선 경기가 중계되고 있다. /웹사이트 캡처

‘제발 콜드게임ㅠㅠ’ ‘찬호형 좀 말려줘’ ‘찬호형 멈춰!’ ‘진짜 말 많네ㅋㅋㅋ’ ‘해설이 자신의 인생을 해설하는 다소 이상한 중계’.

2일 오후 2시 45분 한국과 이스라엘이 맞붙은 도쿄올림픽 야구 본선 2라운드. 7회초 우리나라가 이스라엘을 10대 1로 크게 앞서며 긴장감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누리꾼들은 모니터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KBS 중계를 맡은 박찬호 해설위원의 사담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 종종 수다스러운 모습을 보여 ‘투머치토커(too much talker·말이 많은 사람)’로도 불리는 박찬호 위원의 해설에 누리꾼들은 네이버 스포츠에서 실시간 채팅으로 ‘박찬호 놀리기’를 이어가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중계방을 떠나지 못했다.

박찬호의 '투머치토커'라는 별명을 콘셉트로 살린 KCC 광고. /유튜브 캡처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를 중심으로 경기를 보며 실시간 소통하는 놀이 문화가 도쿄올림픽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에 따라 당초 흥행 실패할 것으로 예상됐던 도쿄올림픽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전 올림픽과 맞먹는 수준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일등공신은 지상파 3사로부터 온라인 올림픽 중계권을 받아낸 네이버·웨이브·아프리카TV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이다. 일방적으로 경기 영상을 보면서 전문가 해설을 듣는 지상파 중계와 달리, 모바일로 접속한 채팅방에서 경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OTT 중계에 MZ세대 시청자가 특히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애플리케이션(앱) 분석업체 앱애니에 따르면 국내 최대 개인방송 플랫폼 아프리카TV는 올림픽 개막부터 사흘간 일일 최대 다운로드 수가 그 전 일주일보다 90% 증가했다. 전 세계 중계 앱을 통틀어 9번째로 높은 증가율이다. 웨이브 또한 20% 늘었다.

전세계 도쿄올림픽 중계 앱들의 올림픽 개막 전후 다운로드 수 변화율. /앱애니 제공

아프리카TV는 개인방송 스트리머인 ‘BJ’들의 편파 중계로 인기몰이 중이다. 지난달 31일 치러진 멕시코와의 축구 16강전, 여러 BJ 중계방에선 각각 수천~수만명의 사람들이 접속해 채팅에 여념이 없었다. 비교적 중립적인 지상파 중계와 달리 일부 BJ는 첫 실점으로 이어진 파울 선언에 “아 왜!”라며 노골적으로 반발했고 누리꾼들도 “심판이 편파 판정한다” “막고 역습 가자”와 같은 채팅으로 호응했다. 곧이어 이동경 선수가 첫 만회골을 넣자 약속한 듯 이 선수의 별명인 “도쿄리”라는 세 글자가 채팅창을 뒤덮었다. 한국이 3대6으로 지고 난 후, BJ와 누리꾼들은 “K리그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등 패인을 놓고 의견을 공유했다.

지난달 31일 아프리카TV의 대한민국 대 멕시코 축구 16강전 중계방들. /아프리카TV 제공

게임 방송 등으로 100만명에 가까운 애청자(구독자)를 가진 BJ 감스트는 아예 경기 직후 한국 선수들의 아쉬웠던 순간 등을 되짚는 ‘한국축구 열받네요’라는 제목의 파생 콘텐츠를 내놓기도 했다. 비전문가의 능청스러운 훈수로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일부 공감을 얻어내는 콘셉트로, 유튜브에서 영상 게시 3일 만인 이날 기준 87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올렸다.

MZ세대의 ‘올림픽 놀이’는 중계 플랫폼 밖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어졌다. 전날 한국 신기록, 세계 4위의 성적을 올린 육상 높이뛰기 국가대표 우상혁 선수가 경기 직후 경례하는 모습은 ‘AP 기자가 찍은 우상혁 경례 모음’ 등의 게시물로 다수 커뮤니티에 퍼지며 화제가 됐다.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가 지난 1일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선에서 마지막 시도 실패 후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웨이브는 배구 김연경, 수영 황선우, 양궁 김제덕·안산 선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스타가 된 선수들의 과거 예능 출연·인터뷰 등 영상을 팬들에게 연계 제공, 자사 콘텐츠 이용률 제고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 덕분에 올림픽 경기 영상 외 웨이브의 스포츠 콘텐츠들의 시청량은 올림픽 전과 비교해 평균 10배 가까이 늘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웨이브 관계자는 “올림픽 경기는 일과 시간에도 진행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시청할 수 있는 OTT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라며 “젊은 세대의 모바일 선호 경향과 맞물려 OTT 중계가 인기를 얻고 있다”라고 했다.

웨이브의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들 관련 스포츠 콘텐츠 모음. /웨이브 앱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