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량을 2023년까지 60대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EUV 장비는 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장비로, ASML이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EUV 장비를 확보하기 위한 삼성전자와 TSMC의 쟁탈전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진행된 2분기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EUV 장비 생산량을 올해 40여대로 늘리고, 2023년 60대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라고 했다. 지난해 총 31대를 생산했는데, 매년 생산량을 50% 가량 늘리겠다는 것이다.
EUV 장비는 반도체 원재료인 실리콘 웨이퍼(Wafer)에 회로를 그려 넣는 노광 공정에 사용된다. ASML이 독점 생산해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는데,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에 대한 기대 수요로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
반도체는 회로 선폭이 좁으면 좁을수록 크기를 줄이면서 성능과 전력효율을 높일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10㎚(나노미터·1㎚는 10억 분의 1m) 미세공정이 가능한 회사는 삼성전자와 TSMC가 유일하다. 두 회사는 EUV 장비를 활용한 5·7㎚ 반도체를 주력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보유 중인 EUV 장비는 TSMC가 50대로 삼성전자(25대)과 비교해 두 배 많다.
삼성전자와 TSMC는 주력 제품의 생산량을 늘리는 동시에 3㎚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어 EUV 장비 확보는 필수적이다. 특히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에서 TSMC를 뛰어넘으려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EUV 장비 확보에 회사 명운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ASML의 네덜란드 본사를 찾은 것도 EUV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 부회장은 당시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등 주요 경영진을 만나 EUV 장비 공급 확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EUV 장비 쟁탈전에는 SK하이닉스를 포하한 다른 회사들도 뛰어든 상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월 ASML과 향후 5년 간 4조7500억원 규모의 EUV 장비 공급 계약을 맺었다. SK하이닉스는 이달 초 EUV 장비를 활용한 10나노급 4세대(1a) D램 양산을 시작하기도 했다.
D램 시장 3위 미국 마이크론과 4위 대만 난야도 EUV 장비 도입을 선언한 상태다. 마이크론은 최근 2분기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2024년부터 EUV 장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난야도 이른 3년 내에 EUV 장비를 적용한 제품을 내놓겠다고 했다.
한편 EUV 장비는 최근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경쟁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EUV 장비가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네덜란드 정부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압박에 네덜란드 정부는 ASML의 EUV 장비가 중국으로 수출되는 것에 대한 허가를 내리지 않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이런 조치에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