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기 게임 '마인크래프트'가 셧다운제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로그인 계정 통합을 진행하며 국내 19세 미만 이용자의 계정 생성을 막자 셧다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마인크래프트 홈페이지 캡처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호하기 위해 심야 시간 미성년자의 게임 접속을 막는 ‘게임 셧다운제’가 또다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청소년 인기 게임 마인크래프트가 국내에서만 ’19금’ 게임이 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법망을 피하려 꼼수를 부린 건 게임을 운영하는 주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책임이지만, 사태가 촉발된 주된 원인은 셧다운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게임 생태계가 PC에서 모바일로 이동했는데, 제도는 10년 전 그대로라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게임 셧다운제를 폐지하거나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14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셧다운제 폐지 논란에 불을 지핀 게임 ‘마인크래프트’는 레고 같은 블록을 쌓아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공간을 꾸미는 게임이다. 특히 어린 이용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어 ‘초통령(초등학생+대통령) 게임’으로도 불린다. 폭력 등 선정적인 요소가 적고 코딩 교육용으로 사용돼 학부모 사이에서도 ‘건전한 게임’으로 각광 받는다.

이런 인기를 증명하듯, 지난해 청와대에서는 어린이날 행사를 위해 ‘청와대 마인크래프트 맵’을 오픈 소스로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마인크래프트 속에서는 따로 정해진 퀘스트(게임 속 과제) 없이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건물을 짓거나 서바이벌 등 게임 요소를 즐길 수 있어 최근 화제가 된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 게임으로도 관심을 받고 있다.

◇ ‘초통령 게임’ 마인크래프트가 초등학생 접근을 막는다?

어린이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끄는 마인크래프트가 하루 아침에 ’19금 게임’이 돼 버린 건 올해 초의 일이다. 마인크래프트는 게임 개발사인 모장스튜디오 계정과 MS의 게임 플랫폼인 ‘엑스박스 라이브’ 계정 두 가지로 로그인할 수 있는데, 모장스튜디오 계정에서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됐다. MS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엑스박스 라이브’로 마인크래프트의 모든 계정을 모으기로 했는데, MS는 엑스박스 라이브 계정의 연령 제한을 두고 있어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 엑스박스 라이브는 국내에서만 19세 이하 이용자의 계정 등록을 막고 있다. 이에 따라 마인크래프트를 즐기기 위해 새로 계정을 만들려던 미성년자의 게임 접속이 원천 봉쇄됐다. MS 측은 마인크래프트 계정 생성 시 ‘미성년자는 게임에 접속 할 수 없다’는 안내 문구도 표시했다. 앞서 계정 통합을 진행한 마인크래프트 모바일 버전도 19세 이하는 계정 등록을 할 수 없다.

이 같은 MS의 행위에 대해 업계는 ‘셧다운제’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보고 있다. 셧다운제에 따르면 게임 회사들은 청소년이 심야시간대에 게임에 접속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게임에 ‘접속 차단’ 등의 기능을 새로 넣거나 별도의 서버를 설립해야 한다. 하지만 MS는 시간과 비용이 드는 접속 차단 기능을 새로 개발하거나 한국용 서버를 만드는 대신 아예 미성년자의 접속을 막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로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미성년자가 이용할 수 없게 된다는 비판을 받자 지난 2일 "MS의 게임 운영 정책 변경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여성가족부 페이스북 캡처

◇ 여론은 이미 “셧다운제 실효성 없다”

마인크래프트는 국내 게임심의 등급상 ’12세 이용가’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MS가 시스템적으로 ‘19금 게임’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게임 셧다운제의 도입과 운영을 담당하는 주무부처 여성가족부 역시 마인크래프트 사태는 셧다운제 본연의 문제라기보다 MS 시스템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지난 2일 여가부는 “마인크래프트 게임의 19세 미만 청소년 대상 이용이 올해 12월부터 제한된다는 사항은 MS사의 게임 운영 정책 변경에 따른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론은 “셧다운제가 없었다면 MS가 기형적인 계정 등록 방안을 내놓았겠느냐”며 맞서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셧다운제는 청소년 수면 부족 문제가 대두된 지난 2004년 청소년보호위원회와 일부 시민단체 주도로 제정 논의가 이뤄졌다. 이후 7년 간 논의 후에 2011년 11월 본격 도입됐다. 셧다운제는 크게 ‘강제적 셧다운제’와 ‘선택적 셧다운제’ 두 가지로 나뉘는데, 통상 사용하는 셧다운제라는 용어는 ‘강제적 셧다운제(이하 셧다운제)’에 해당한다.

청소년보호법은 강제적 셧다운제에 대해 “인터넷 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새벽 시간 동안 인터넷 게임을 제공하면 안 된다”고 설명한다. 심야 시간대 미성년자의 게임 접속을 막은 것은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호하고 게임 중독을 방지한다는 취지다.

문제는 셧다운제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각종 연구자료를 보면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호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게임 중독 방지 측면에서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대상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게임 환경은 PC에서 모바일로 이미 전환한지 오래인데, 현행 셧다운제는 PC 게임만 해당하고, 모바일 게임은 제재할 수 없다.

◇ 폐지냐, 개선이냐 갈림길에 놓인 셧다운제

전문가들은 셧다운제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게임 셧다운제 폐지 및 부모 자율권 보장 세미나’에서 조문석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셧다운제로 인해) 글로벌 게임사들이 온라인 게임을 한국에 공급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라며 ”마인크래프트 역시 그런 사례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기업은 셧다운제만을 위한 시스템 구현 비용을 회피하기 위해 아예 만 16세 미만에 대해서는 서비스를 공급하지 않을 수 있다”라며 “이 역시 셧다운제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줌으로 '게임 셧다운제 폐지 및 부모 자율권 보장 세미나'를 개최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셧다운제는 우리나라 외에는 시행하고 있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제도다”라며 “글로벌 게임 산업 관점에서는 서버를 이중으로 만들거나 국내 연령 제한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이번 MS 사례 같은 경우가 또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위 회장은 “여력이 부족한 중소 게임 개발사에서는 아예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만 개발하고 있는 추세다”라며 “법적 근거와 제도적 설득력도 부족해 폐기되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학부모 중에서는 셧다운제의 유지를 바라는 의견도 나온다. 어린이들이 게임에 과몰입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제도라는 점에서다. 11세 자녀를 두고 있는 이모(여·42)씨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겨울방학부터 마인크래프트에 푹 빠져 공부를 게을리 하고 있다”라며 ”셧다운제라도 있어야 강제적으로 게임을 못하게 될 것 같고, 이번에 계정 자체를 막아버린 것도 속이 다 시원하다”라고 했다. 15세 아이를 키우는 박모(여·48)씨 역시 “중3 올라가는 아이가 밥 먹거나 공부하는 시간 외에는 게임만 하고 있다”라며 ”하루 4시간씩 게임을 해 중독인 것 같다. 셧다운제보다 더 강력한 방안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셧다운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 아이의 김모(48)씨는 “우리 아이들의 경우 모바일 게임을 주로 하는데 성인인 내 아이디를 이용해 게임을 하고 있다”라며 “이런 상황이라면 셧다운제는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모바일 게임이 셧다운제 대상이 아니라 강제로 아이들을 통제할 수는 없고, 가정에서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라며 “정부 당국과 게임 회사들이 실정에 잘 맞고, 또 잘 설계된 제도를 도입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셧다운제와 관련해서는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발의한 청소년 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셧다운제를 유지하면서 학부모 등 친권자가 요청한 경우에는 인터넷 게임 제공자가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도 게임을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