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에서 생산하고 있는 8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 /TSMC 제공

자동차 반도체와 같은 아날로그 집적회로(IC)·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등을 생산하는 8인치(200㎜) 웨이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품귀 현상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8인치 파운드리 기업인 키파운드리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SK하이닉스의 시계가 빨라질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호황이 예견된 만큼 적기 투자로 시장에 뛰어들어야 효과를 크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대만 언론 등에 따르면 TSMC와 UMC, TSMC 산하 뱅가드인터내셔널세미컨덕터(VIS) 등 대만 파운드리 업체들은 일부 고객의 취소가 있지 않는 한, 8인치 반도체의 수급 불균형이 1년 내내 지금과 같은, 혹은 그 이상으로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반도체가 없어서 제품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내년까지도 지속돼, 업계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팹리스인 인피니언이 설계하고, 파운드리에서 생산하는 산업용 MCU XMC시리즈. /인피니언 제공

8인치 웨이퍼 파운드리에서는 주로 자동차용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 일반 MCU를 포함한 아날로그 IC, DDI, 상보형 금속산화 이미지센서(CIS) 등을 만든다. 이 가운데 자동차 MCU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심각한 수급 문제를 겪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자동차 생산은 급감하고, TV나 가전 수요는 늘면서 자동차 반도체 물량이 TV 등으로 옮겨간 탓이다. 하반기 이동 수요는 회복했으나, 반도체 주문과 생산은 급하게 늘리기 어려워 올해 상반기까지도 자동차 반도체 수급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다만 각 완성차 업체와 각국 정부까지 나서 수급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끝에 자동차 반도체는 어느 정도 수급이 회복됐다는 게 중론이다. 파운드리 역시 자동차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면서 리드타임(주문부터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은 기존 30~40주에서 15~20주로 줄어들었다고 전해진다.

반면, 일반 MCU와 같은 아날로그 IC, DDI,CIS 등은 여전히 수급 불균형을 겪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납품가에 마진이 남지 않아 파운드리의 생산 우선순위에서 밀린 탓이다.

8인치 파운드리 공급 상황이 내년까지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업계 시선은 자연스럽게 SK하이닉스로 쏠리고 있다. 최근 전략적 인수합병(M&A)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으로 8인치 웨이퍼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두 배 이상 늘리겠다고 한 것과 맞물려 키파운드리 인수 검토 소식이 알려졌고, 인수 작업을 애초보다 더 빠르게 진행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린룸. /SK하이닉스 제공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최근 “현재보다 파운드리 생산 능력을 2배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며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국내 설비 증설, 인수합병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에서 파운드리 사업을 하고 있으나, 올해 안으로 충북 청주의 관련 시설을 모두 중국 우시로 옮길 예정이다.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이후 1000여곳에 이르는 중국 팹리스를 중심으로 영업활동을 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따라서 SK하이닉스가 생산능력을 확대하려면 자회사 경유가 아닌, 자체 해결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업계는 SK하이닉스가 생산설비를 새로 구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8인치 장비를 만들 업체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장비를 구한다고 해도 생산능력을 갖추고, 본격적인 생산활동에 들어가기에는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업계는 인수만이 가장 빠른 생산능력 확대 방안으로 여기고, 그 대상을 키파운드리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키파운드리는 1979년 세워진 LG반도체가 모체로, 1999년 현대전자와 합병한 하이닉스반도체에 소속됐다가 2004년 분사한 매그나칩으로 사업부가 옮겨졌다. 이어 2020년 4월 매그나칩에서도 분리돼 독자 사업을 펼치고 있다. 키파운드리는 지난해 3월 지분 49.8%를 취득한 매그너스사모펀드(PEF)에 팔렸는데, 당시 SK하이닉스는 사모펀드에 2073억원을 투자했다. 키파운드리를 SK하이닉스가 완전히 인수한다면 키파운드리로서는 친정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이재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현재 8인치 장비를 현실적으로 사들이기가 어려워 신규투자는 어려운 상황이다”라며 “생산능력을 2배 이상 늘리려면 기존에 매각했던 걸 다시 사들일 수밖에 없어 (SK하이닉스가) 키파운드리를 인수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한다”라고 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관련 인재도 채용했다. 마케팅 부서에서 8인치 파운드리 시장 조사 분석과 업체별 현황, 공급망 관리를 담당할 경력직원을 모집한 것이다. 이 같은 채용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8인치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다만 SK하이닉스는 이 사안과 관련해 “파운드리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키파운드리 인수와 관련해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