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스타트업 행사 '넥스트라이즈 2021'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구성원들이 “그럼 52시간 넘기면 일 그만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데 “예 일 더 하면 안 됩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구성원의 자아 실현을 막는 기분. 출퇴근 시간 기록 시스템도 도입했다. 구성원들이 “이거 꼭 기록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데 “예 해야 합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하기 싫은 대답이었다. 회사와 구성원 모두 수준이 낮아진 기분. 하향 평준화, 사다리 걷어차기, 그리고 조삼모사.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

최근 소프트뱅크벤처스, 알토스벤처스 등으로부터 100억원씩 총 300억원을 투자 받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보이저엑스’의 남세동 대표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리자 250여개 댓글이 달렸다. ‘공감한다’ ‘일할 수 있는 자유도 필요하다’라는 반응부터 ‘자발적 헌신과 타의에 의한 과다 근로가 쉽게 구분되기 어렵다” “주 52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 자체가 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자아실현에 주 52시간이면 충분하다”라는 비판 목소리도 있었다.

남 대표는 댓글에서 지적되고 있는 사안에 대한 추가 포스팅을 이어가며 ‘주 52시간 논쟁’을 주도했다. 지난 1일부터 5~49인 규모 사업장에서 주 52시간 근무제가 전면 도입되면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들이 소셜미디어(SNS)에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성장이 필요한 50인 미만 초기 스타트업에 일괄적으로 이런 법의 테두리를 씌우는 것이 맞는가가 핵심 논점이다.

다만, 영향력이 큰 빅 마우스나 스타트업 대표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주 52시간 반대 입장이 전체 스타트업 업계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 직원들이 이를 공론화하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스타트업 A사 대표는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이유로 ‘금전적 보상’을 첫손에 꼽았다. 스타트업은 직원들에게 연봉 외에 주식 또는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일이 많다. 회사 가치가 올라가면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집에 가지 않고 일하는 분위기가 크다는 것이다.

남 대표도 페이스북에서 “지금 주식 1%를 갖고 있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열심히 하면 유니콘 만드는 데 꽤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100억원을 버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식 노동, 스타트업의 특징은 근로자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크고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이라면서 “혼자서 70시간 일하는 게 둘이서 35시간씩 일하는 것보다 (퍼포먼스가) 훨씬 잘 나올 수 있다. 50명이 하던 거 100명이 하면 오히려 안 될 수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 킴 알토스벤처스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52시간 아니라 100시간 일하고 싶은 사람들도 종종 있다. 일년 내내는 아니라도 가끔씩. 그런 특출한 곳, 사람들에게 제지하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라며 남 대표의 발언을 지지하기도 했다.

다만 창업자 중심의 이런 주장이 스타트업 종사자 의견 모두를 대변하는 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B 스타트업에 일하는 한 직원은 “주 52시간에서 휴게 시간은 제외되기 때문에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9시까지 12시간 회사에 있어도 실제 하루에 근무시간으로 찍히는 건 10시간이고 5일 연속 이렇게 일해도 주 50시간이기 때문에 2시간이 남는다”라면서 “주 52시간을 꽉 채워 일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것이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이런 수준의 일을 요구하는 것은 공감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C 스타트업 직원도 “인재 전쟁 시대에 아직도 ‘시간제한을 두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직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라면서 “창업자들은 직원들이 주어진 시간 동안 어떻게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했다.

최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진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정보통신기술(ICT) 등 업무 특수성이 있는 스타트업 등에 주 52시간제 도입이 충격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기자 질문에 “업계에서 주 52시간 제한을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다”라면서도 “업무 때문에 자기계발이나 가정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일과 가정의 밸런스를 만들어 나가는 방향성 자체는 맞는 만큼 어떻게 하면 주 52시간 근무를 잘 지키면서 기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을 수 있을지 의견을 듣겠다”라고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