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콘텐츠제공자(CP, 넷플릭스 의미)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 SK브로드밴드 의미)의 망을 통하여 트래픽(자료 전송량)을 전송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에 대하여 지불하는 방식은, 회선용량 단위(Gbps)로 접속회선료 또는 접속통신료 등의 명목의 금전을 지급하거나 CP가 ISP에게 콘텐츠를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또한 이 사건에서 원고(넷플릭스)들이 제안하는 것처럼 복수의 지역에 CP의 오픈커넥트(OCA)를 설치하여 ISP의 망에 발생하는 트래픽을 경감시키거나 각종 공사비용과 설비의 업그레이드 비용 등을 상호 분담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에 관한 대가가 지급될 수도 있다.이처럼 원고들이 피고(SK브로드밴드)에게 금전으로 사용료를 지급하는 것 외에도 위와 같은 방법들 모두 ‘CP의 콘텐츠를 최종이용자에게 도달시키기 위해 ISP의 망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지불되는 경제적 이익’에 해당된다. 원고들과 피고는 협상에 의하여 어떠한 방식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사적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법원이 금전으로 그 지급을 명하는 것은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가 완전히 결렬된 이후에 한하여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며 제기한 소송에 대한 1심 판결문 일부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지난달 25일 이른바 ‘공짜망 소송’에서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다.
SK브로드밴드는 법원이 넷플릭스가 협상 테이블로 나와 망 사용료(채무) 협상에 임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런데 이 결과를 두고 정작 넷플릭스가 느긋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망 사용료가 아니더라도 지금 같은 방식으로도 대가를 지급할 수 있다는 대목 때문이다.
세계 최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와 국내 초고속인터넷 사업자인 SK브로드밴드가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주장을 두고 오랜 싸움을 벌이고 있다(하단 기사 참조). 이런 갈등은 금전적 대가인 ‘망 사용료’를 요구하는 SK브로드밴드와 ‘망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넷플릭스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을 경우 지속될 전망이다.
SK브로드밴드의 승소가 알려졌을 때만 해도 KT, LG유플러스 등 다른 망 사업자 역시 넷플릭스를 상대로 사용료를 내라는 줄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판결문을 읽어본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두 회사의 갈등이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단 점을 확인했다”라며 일단 관망 분위기다. 넷플릭스는 공식적으로는 SK브로드밴드와 지속 협의하고, 망 사업자의 트래픽(자료 전송량) 부담을 줄이는 OCA 같은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으나, 양측 입장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항소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 “만나자”는 SK…넷플릭스, 다음 주쯤 항소 여부 결정할 듯
1심 결과가 알려진 지 사흘 뒤인 지난달 28일 박정호 SK텔레콤 대표는 ‘넷플릭스 소송 결과에 따른 협업은 어떻게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넷플릭스와 만날 시점이 다가왔다”며 “소송 결과가 우리 미팅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망 사용료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는 취지다.
SK브로드밴드 측은 “원고(넷플릭스)는 피고(SK브로드밴드)에게 적어도 피고로부터 피고의 인터넷 망에 대한 연결 및 그 연결 상태의 유지라는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는 것에 대한 대가(연결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내용이 포함된 데 주목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법원은 넷플릭스가 연결에 대한 대가를 SK브로드밴드에 부담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문을 통해 명확히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는 다음 주 중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SK브로드밴드에 채무가 없다고 확인해달라는 소송에서는 패소했기 때문에 2주 내 항소 여부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공식적으로 넷플릭스 측은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금전적 대가를 요구하는 SK브로드밴드와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작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겉으로 보기에는 패소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SK브로드밴드가 실제 망 사용료를 받아낼 수 있거나, 받을 만한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없다”라며 “실제 합의를 진행하더라도 넷플릭스가 얼마를 제시할지는 미지수다”라고 말했다.
◇ OTT 가격 인상 당분간 없을 듯… KT “소송 계획 無” LG “받고 있다”
이번 1심 결과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는 식으로 나든 OTT 이용자가 부담할 요금이 인상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SK브로드밴드가 소송에서 이기면 KT와 LG유플러스 역시 넷플릭스와 망 사용료 협상을 벌이고, 이는 곧 OTT 업체의 요금 ‘줄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넷플릭스가 승소할 경우에는 망 사업자에게 사용료를 내고 있는 네이버, 카카오가 이번 판결을 근거로 지불을 거부하고, 이는 곧 망 사업자(ISP)의 매출 타격으로 이어져 인터넷서비스 요금이 올라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KT와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의 소송 결과가 각 사에 미칠 영향은 사실상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KT 관계자는 “넷플릭스와 망 사용료 관련 별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지 않고, 협상은 지속해서 진행 중이다”라고만 했다. 망 사용료를 받기 위한 협상은 지난해부터 진행 중이지만, 별도 소송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LG유플러스 측은 이미 양측의 협력으로 인한 수익에서 망 사용료 명목의 비용을 받고 있어 추가 사용료 요구는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수익을 배분할 때 망 사용료를 고려해서 비율을 나누고 있다”며 “일부 회사는 망 사용료라는 개념을 따로 받으려고 하는데, 망 사용료를 구분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익에서 떼어가는 방식으로 정산하고 있다”라고 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다만 “당장 ISP들이 망 사용료를 받겠다고 나서지 않겠지만,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향방에 따라 중장기적으로는 행동에 나설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