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의 대만 타이중 D램 생산 팹. /마이크론 제공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D램 가운데서는 회로 선폭이 가장 좁은 것으로 알려진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급 4세대(1α) D램의 양산을 공식화했다. 양산이 본격화하면 세계 최초로 기술을 개발했다는 발표에도 양산되지 않아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세간의 비판을 정면으로 깨는 셈이다.

마이크론의 행보는 아직 3세대(1z) D램에 주력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몇 발짝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게다가 마이크론은 1α D램 개발·양산에 반도체 미세공정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연말에야 1α D램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세계 1위 삼성전자와 2위 SK하이닉스는 자존심을 단단히 구겼다.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대만에서 있었던 ‘컴퓨텍스 2021’ 기조연설을 통해 “1α LPDDR4x(모바일용) D램의 대량 생산(양산)을 시작했다”며 “1α D램에 기반한 DDR4는 AMD 서버용 프로세서 3세대 에픽을 포함한 최신 데이터센터와 호환 인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1α D램 기반 메모리를 대만 PC 기업 에이서에도 장착하기로 했다. 서버부터 일반 PC까지 1α D램 사용범위를 폭넓게 잡았다. 시장 선점을 위해 제품 카테고리를 확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마이크론은 이달 안으로 대만 타이중(台中市)의 중부 대만과학단지의 A3 팹(공장) 규모를 애초 계획보다 더 키우기로 했다. 투자비는 16조원쯤으로, 1α D램을 위한 생산라인을 추가하는 것이다. 12인치(300㎜) 웨이퍼(반도체 원판) 기준으로 한 달에 5만~6만장을 더 생산하겠다는 게 마이크론의 계획이다. A3는 1α D램의 글로벌 거점으로 육성한다.

마이크론 클린룸 내부. /마이크론 제공

글로벌 D램 업계에서는 회로 선폭이 10㎚대로 진입한 이후 ㎚ 단위의 기술경쟁과 마케팅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미세공정 난이도가 워낙 높은 탓에 기술 마케팅에 대한 실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최근에는 선폭을 ‘숫자+문자’로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10㎚의 앞자리 ‘1’에 x(1세대)·y(2세대)·z(3세대)가 붙었다. 이어 4세대는 1a, 5세대는 1b 등으로 표현한다. 마이크론은 알파벳 a를 그리스 문자 α로, b는 β로 쓴다. 1x는 10㎚ 후반, 1a(α)는 10㎚ 중반으로 추정한다.

마이크론이 1α D램을 처음 개발했다고 발표했을 때, 업계에서는 “진짜 4세대가 맞느냐”라는 반응이 나왔다. 마이크론이 있지도 않은 기술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이크론은 업계 선두인 삼성전자와 기술 격차가 1~2년은 벌어져 있던 것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1α D램은 이 차이를 단숨에 뛰어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이크론의 추월에 삼성전자는 D램 선폭의 문자 표현이라는 업계의 암묵적인 룰을 깨고 “회사가 개발 중인 1a D램의 선폭은 14㎚”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두고 모호한 표현으로 기술력의 차이가 없어 보이는 단점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왔다.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열린 컴퓨텍스 2021에서 자사의 세계 첫 4세대 D램과 172단 낸드플래시에 대해 설명했다. /마이크론 제공

하지만 마이크론의 1α D램 양산 발표로 이런 선입견은 더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정말로 양산을 시작했다면 마이크론이 기술 뻥튀기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로 1α를 개발했는지를 곧 실제가 있는 제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서다.

마이크론은 1α D램 개발과 양산에 EUV 장비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UV는 미세공정에 있어 필수 장비로 꼽히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3세대인 1z D램부터 이 EUV를 활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EUV 없이도 차세대 D램을 만들기 위해 마이크론은 몇 년 전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키옥시아 등 메모리 반도체 선두 기업으로부터 엔지니어를 다수 채용했던 것으로 업계는 파악한다.

SK하이닉스도 4세대 1a D램 개발을 마쳤다고 발표했으나, 양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최근 완공한 경기 이천 M16에서 1a D램을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고객사를 대상으로 제품화에 나섰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SK하이닉스는 이 공장에서 1b D램까지 만든다는 계획이다.

마이크론이 세계 처음으로 개발해 양산한 176단 낸드플래시 기반 SSD. /마이크론 제공

마이크론은 176단 낸드플래시를 기반으로 한 솔리드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신제품도 선보였다. 이 역시 마이크론이 업계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낸드플래시는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 확대가 기술력인데, 단수가 높을수록 저장 용량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176단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적층 단수로, 1위 삼성전자가 업계 처음으로 쌓아 올린 128단보다 높다.

SK하이닉스는 176단 개발을 완료한 상태지만, 양산은 아직이다. 업계는 SK하이닉스가 올해 하반기에 양산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삼성전자는 현재 160단 이상의 고적층 낸드플래시를 개발하고 있고, 올해 안으로 양산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이론상으로는 200단 이상도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