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물량이 98%에 달할 정도로 해외 의존이 심한 국내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망이 앞으로 수년 안에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들과 함께 자동차용 반도체의 개발·양산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최근 자동차용 반도체 개발을 위해 국내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 업체를 선정하고 있다. 팹리스는 반도체를 설계하지만, 생산 공장이 없는 회사를 의미하고,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가 그린 설계도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공정에 적합하도록 제조용 설계도로 만드는 회사를 이른다.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는 맞춤형 반도체를 만드는 제조 생태계에 빠질 수 없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에 반도체 업계는 현대모비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공급망 재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글로벌 자동차 반도체 공급 부족(쇼티지)에 대비해 재고를 넉넉하게 확보해 뒀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올해 들어 생산 차질을 빚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결국 반도체 내재화로 가닥을 잡았다는 게 업계 해석이다.
현대모비스는 최근 정부가 마련한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를 통해 앞으로 만들려고 하는 자동차용 반도체 리스트와 내용을 팹리스와 공유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해당 리스트에는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이 포함돼 있다.
현대모비스는 독자 칩 개발을 외주에 맡길 것으로 보이는데, 요구 기능과 성능을 일러주면 팹리스가 이에 맞춰 설계하는 식이다. 맞춤형 통합칩(SoC) 형태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테슬라가 삼성전자 시스템LSI에 맞춤형 SoC 설계와 생산을 맡긴 것과 비슷하다.
우선 현대모비스는 비교적 기술진입 장벽이 낮은 인포테인먼트용 반도체 개발부터 나설 것으로 여겨진다. 이어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PMIC,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등으로 기술 범위를 넓혀간다는 포석이다. 현대모비스는 올해 1분기 보고서에서 “올해 연구개발(R&D) 부문 내 반도체 설계 섹터를 신설해 시스템·전력반도체 등 미래형 자동차용 반도체 내재화를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이 반도체를 직접 만들 것이라는 신호는 이미 지난해 말 현대오트론의 반도체 사업 부문을 인수했을 때부터 감지됐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지난해 말 현대오트론의 반도체 사업 부문을 인수한 것을 통해 자동차용 반도체 분야의 전문적인 설계, 개발, 검증 역량을 키워 미래차 전장 분야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