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가격 상승으로 국내 대표 디스플레이 기업인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생산 전략도 변화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LCD 패널이 가격 상승 뒤에 수익성을 보장하는 ‘캐시카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 회사는 이미 지난해 TV용 대형 LCD 생산을 종료할 방침이었지만, 삼성디스플레이는 내년 말까지, LG디스플레이는 장기간 생산 유지를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1일 디스플레이업계에 따르면 따르면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최근 대형 LCD 사업부 임직원들에게 “회사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내년 말까지 LCD 생산을 지속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애초 지난해 말 TV용 대형 LCD 패널 생산을 종료하고 사업에서 철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삼성전자 VD 사업부의 요청으로 생산을 올해 말로 연장했으며, 생산 종료를 한 차례 더 미루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삼성디스플레이는 대형 LCD 패널을 생산 중인 충남 아산캠퍼스의 L8 라인 등을 내년까지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함께 대형 LCD 패널을 생산해오던 아산의 L7는 이미 지난 3월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해당 라인에는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라인이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월에는 중국 장쑤성 쑤저우 8세대(2200×2500㎜) LCD 생산라인을 CSOT 측에 매각하기도 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 전경.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업계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대형 LCD 패널 생산을 유지하는 것을 두고 삼성전자가 중국 업체와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디스플레이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중국 업체들은 LCD 패널 시장 장악을 목표로 지난 2019년부터 LCD 패널 가격을 내리는 이른바 ‘저가 공세’를 펼치며 시장 침투력을 높였고, 수익성이 악화한 한국 기업들은 LCD 사업 철수를 선언한 뒤 생산량을 줄여 나갔다. 이후 LCD 시장은 BOE, CSOT의 양강 체제로 재편됐다.

기세를 잡았다고 본 중국 업체들은 공급량을 조절해 가며 LCD 패널 가격을 지난해부터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반도체 공급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지며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역시 공급 차질을 빚자 LCD 패널 가격에 영향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는 BOE, CSOT 등 중국 기업들과 LG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TV용 LCD 패널을 납품받고 있는데, 중국 업체들이 패널 가격을 흥정하면서 제조원가 상승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있다. 이에 TV용 LCD 패널 물량 일부를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로 옮겨 가격 협상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디스플레이 노트북용 OLED 생산라인.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 지난해 대형 LCD 생산 연장은 삼성전자 VD사업부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당시 회사 내부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손해가 나는 LCD를 굳이 더 만들어야 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대형 LCD 패널 가격 상승세는 또 다른 수익원으로서의 LCD 가능성을 만들었고,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굳이 생산을 종료할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다.

특히 현재 대형 LCD 패널 생산라인은 추가적인 투자도 필요하지 않다. 만들어 팔기만 하면 수익이 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LCD 패널 생산 연장은 퀀텀닷(QD) 디스플레이 전환에 상당한 돈을 들여야 하는 회사 사정을 고려했을 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요청도 있었을 테지만,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자사의 이익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는 확고한 자세를 살펴본다면 (삼성디스플레이의) LCD 연장 생산 방침은 현재의 LCD 사업부의 고(高) 수익성이 2022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컨설턴트(DSCC)는 LCD 가격 상승세가 올해 2분기 둔화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조정하고, 3분기까지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봤다. DSCC가 집계한 지난해 4분기 LCD 패널 가격은 전분기보다 27% 올랐고, 지난 1분기에는 14.5% 상승했다. DSCC 측은 “2분기는 전분기 대비 17%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LG디스플레이 제공

애초 TV용 LCD 패널 사업을 접고, 해당 생산라인은 수익성이 높은 IT(모니터·노트북·태블릿 등)용 라인으로 바꾸려던 LG디스플레이 역시 지난해 라인을 유지하기로 했고, 이어 추가적인 생산 연장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회사 측은 가격 동향 등 시장 상황을 고려해 TV용 대형 LCD 생산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디스플레이나 LG디스플레이가 사업을 접으려 했던 것은 패널 가격 하락으로 적자를 면치 못했던 대형 LCD 사업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라며 ”하지만 패널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수익이 난다면 추가로 돈이 더 들어가지 않는 대형 LCD 사업을 접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