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성 노키아코리아 CTO. /노키아코리아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각) 공동성명에서 “오픈랜(OPEN RAN·개방형 무선 접속망) 기술을 활용해 투명하고 효율적이며 개방된 5세대(5G), 6세대(6G) 네트워크 구조를 개발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약속했다”라고 밝혔다.

오픈랜은 무선기지국 구간별 인터페이스(물리적 매개체)를 표준화시키고, 여기에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탑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 세계 통신장비 업계 1위인 중국 화웨이를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미국이 미래 통신시장을 선점할 수 없는 만큼 화웨이 장비를 쓰지 않더라도 통신이 가능한 이런 오픈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란 게 업계 공통된 해석이다. 미국은 퀄컴, 브로드컴 같은 주요 통신기술 업체가 있으면서도 자국 장비업체는 두고 있지 않다. 현재 이 시장은 화웨이, ZTE(중국)를 비롯해 에릭슨(스웨덴), 노키아(핀란드), 삼성전자(한국)가 과점하고 있다.

장비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무선통신에 필요한 솔루션을 한 번에 제공하는 엔드 투 엔드(end to end) 서비스를 제공 중인 통신장비 업체로선 미국이 주도하는 ‘오픈랜 물결’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일찌감치 오픈랜 시장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이 노키아다. 24일 이준성 노키아코리아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전화 인터뷰를 갖고 바이든호(號) 미국이 추진하는 오픈랜이 무엇이고, 언제쯤 실현 가능한지, 한국은 어떤지 들어봤다.

―오픈랜을 쉽게 설명한다면.

“기존 이동통신 장비는 인터페이스가 표준화돼 있지 않았다. 노키아와 삼성 장비가 서로 호환이 안 되는 식이다. 오픈랜은 구간별로 인터페이스를 표준화시키는 것이다. 통신사업자 입장에선 구간별로 어디에선 노키아 장비를, 어디에선 삼성 장비를 쓸 수 있게 된다. 오픈랜 표준화 단체들이 일찌감치 설립돼 각 구간별 인터페이스 규격을 정하는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 있는 상태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오픈랜을 적극적으로 내세워 왔다.

“2세대(2G), 3세대(3G) 때만 해도 버라이즌, AT&T, T모바일 같은 미국 통신사업자에 장비를 납품하던 곳은 루슨트(노키아가 인수한 알카텔-루슨트의 전신)나 모토로라(노키아가 인수) 같은 자국 업체들이었다. 어느 순간 다 팔리고 없어졌다. 통신장비에서만큼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가 없어진 것이다. 미국은 통신장비에 들어가는 핵심 기술업체인 퀄컴이나 브로드컴, 마벨 같은 대장들이 있다. 누군가가 표준화만 해놓는다면 얼마든지 미국 장비를 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군사부문에 이어 통신에서도 미국 주도권을 갖기 위한 것이다. 유럽이나 아시아, 서울(LG유플러스)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화웨이를 어떻게 몰아낼 것인가도 바이든 정부의 관심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쓰지마’ 하면 반발이 세진다. 오픈랜 생태계를 갖춰 놓고 화웨이가 점령한 시장에서 하나하나씩 다른 장비로 대체해나갈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오픈랜, 어느 정도 준비되고 있나? 언제쯤 기술 구현이 가능할지.

“꽤 진전이 됐다. 오픈랜 관련 협회가 만들어진 게 4~5년 전이다. 미국·유럽에서 이미 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일본의 제4통신사업자로 진입한 라쿠텐은 미국 알티오스타(베이스밴드), 노키아·KMW·후지쓰(RF), 시스코(코어) 등의 조합을 통해 사실상 오픈랜 개념으로 상용화를 한 단계다. 인텔에서도 ‘플렉스랜’이라는 자체 브랜드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배포 중이다. 정치적으로 미국 중심으로 강하게 오픈랜이 추진된다면 머지않은 시기 상용화될 수 있을 정도로 눈앞에 와 있다고 봐야 한다. 국내 중소업체도 시제품을 만들어 사업자들과 시험 중이다. 국내도 올해면 시험을 다 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통신사업자들은 얼마나 준비하고 있나.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한국은 5G가 약 2년 전부터 깔려 오픈랜에 대한 요구가 없는 편이다. 전 세계적으로 오픈랜 도입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면,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게 될 것이다.”

―장점이 뭔가.

“통신사업자 입장에선 자유도가 커지게 된다. 이를테면 통신사가 A사 제품을 썼다고 해보자. 어떤 소프트웨어를 추가로 적용하고 싶은데, A사 포트폴리오에 없을 수 있다. 추가 개발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여러 제품을 다양하게 쓸 수 있고, 소프트웨어에서도 융통성이 생긴다. 대기업뿐 아니라 인공지능(AI)이나 특정 소프트웨어에 강한 중소기업과도 협업해서 상용화하는 다양한 길이 생기게 된다.”

―통신사업자 입장에선 그렇겠지만, 장비사에 ‘규격화’는 손해 아닌가.

“신당동 떡볶이 골목으로 비유해보자. 어떤 집 한 곳만 잘 되는 게 아니라 50여개 떡볶이집이 다 잘된다. 이 집에 사람이 많으면 저 집으로 흘러간다. 무선 기지국 표준화로 장비간 호환이 가능해지면 특정 통신사에 들어가던 장비가 줄어들 수 있으니 노키아 매출이 일부 줄어들 수 있다. 대신 하드웨어만 팔던 시장이 여러 장비들의 조합을 가능케 할 소프트웨어로까지 비즈니스가 확장될 수 있다. 전체 매출은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노키아는 1위 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오픈랜을 기회로 보고 있다.”

―노키아에 기회이면, 다른 기업에도 기회 아닌가.

“회사 전략 차이다. 노키아는 기지국, 코어, 서비스, 소프트웨어 등에서 다양한 포트폴리오, 개발인력을 갖추고 있다. 에릭슨은 기지국 장비, 기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오픈랜으로 갈 수밖에 없는 트렌드가 된다면 화웨이, 에릭슨 정도의 규모 있는 회사는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은 규모 면에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