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국내 최초의 ‘초거대 인공지능(hyperscale AI)’ 모델인 ‘하이퍼클로바(HyperCLOVA)’를 25일 공개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초거대 AI 개발 경쟁 국면에서 하이퍼클로바를 통해 한국의 AI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초거대 AI는 대규모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슈퍼컴퓨터를 기반으로 딥러닝(심층학습) 효율을 크게 높인 차세대 AI다. ‘초대규모 AI’라고도 한다. 딥러닝 도입 초기 AI인 알파고가 바둑에만 특화했다면, 초거대 AI는 적은 데이터만으로 빠른 학습이 가능해 기업이 원하는 여러 서비스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받는다.
초거대 AI를 개발하려면 슈퍼컴퓨터를 구축해 ‘파라미터’라는 AI 성능지표를 크게 높여야 한다. 파라미터는 인간 뇌의 학습·연산 등을 담당하는 ‘시냅스’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인간 뇌 속 시냅스가 100조개인데 반해, 대부분의 빅테크 기업들이 가진 기존의 AI는 파라미터가 수억~170억개 수준에 머물렀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AI전문기업 ‘오픈AI’가 1750억개의 파라미터를 구현해 만든 AI ‘GPT-3’가 최초의 초거대 AI로 평가받는다. 이 AI는 적은 수의 단어 학습만으로 사람과 대화를 하고 문장과 소설을 창작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네이버는 이날 오후 2시 하이퍼클로바 공개 행사 ‘네이버 AI 나우'에서 이 AI의 파라미터 수가 GPT-3보다 많은 2040억개라고 밝혔다. 자연어(영어·한국어 등 일상에서 쓰는 언어) 데이터 학습량은 GPT-3의 6500배 이상이다. 네이버는 “GPT-3는 영어 중심으로 학습해 국내 기업들이 도입하기엔 한계가 있지만, 하이퍼클로바는 학습량의 97%가 한국어라서 우리나라가 AI 주권을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네이버 사내독립기업(CIC) 클로바(CLOVA)의 정석근 대표는 이날 기조발표에서 “글로벌 기술 대기업들은 대형 AI 모델이 가져올 파괴적 혁신에 대한 기대로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한국의 AI 기술이 글로벌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미 공개된 기술을 활용하고 따라잡는 수준에 그칠 수 없다고 판단해 하이퍼클로바를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이런 AI 개발을 위해 700페타플롭스(PF) 성능의 슈퍼컴퓨터를 도입했고, 최근 서울대·카이스트(KAIST)와 각각 공동 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하는 등 초거대 AI에 대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슈퍼컴퓨터 도입, AI 개발, 공동 연구소 설립 등에 투입하는 비용은 수천억원 규모로 전해졌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를 자사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는 데 우선 사용할 계획이다. 이미 이달 초 검색엔진에 일부 도입해, 사용자가 검색어를 잘못 입력해도 올바른 단어로 바꿔주거나 적절한 검색어를 추천하는 기능을 선보였다.
네이버 쇼핑에 입점한 중소상공인들을 대신해 상품 마케팅 문구를 자동으로 작성해주고 상품 리뷰를 ‘긍정 리뷰’ ‘부정 리뷰’ 등으로 분류하는 일, 창작자가 스토리나 아이디어만 입력하면 웹툰을 그려주는 일, 학생과 일반인이 공부해야 할 내용을 빠르게 요약하거나 모르는 내용을 질문하면 대신 조사해 답변해지는 일 등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네이버는 설명했다. 다른 기업에 이 AI를 판매하는 B2B 사업도 계획 중이다.
정 대표는 “더 짧은 시간과 더 적은 자원을 사용해서 이전에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해지는 새로운 AI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하이퍼클로바를 통해 AI 기술이 필요한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덧붙였다.
LG그룹도 오는 하반기 6000억개 파라미터를 가진 초거대 AI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KT와 SKT·카카오 등도 개발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