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한다. 그중 일부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기업)에 등극했고, 일부는 지난 3월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처럼 더 큰 도약의 기회를 만들었다. K유니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기다. 4차 산업혁명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각국의 국수주의 강화 행보 등 녹록지 않은 대내외 환경에서 K유니콘의 선전은 지속할 수 있을까. ‘이코노미조선’이 유니콘에 다가가는 열정 넘치는 창업자들을 만났다. [편집자 주]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 미국 조지아공대 전기공학부 학·석사, 전AMD GPU팀 엔지니어, 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엔지니어 / 김흥구 객원기자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을 둘러싼 전쟁이 한창이다. 가트너에 따르면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19년 123억달러(약 13조8500억원)에서 2024년 439억달러(약 49조4300억원)로 5년 새 3.6배 급성장할 전망이다. 이미 미국 구글은 2016년 AI 반도체 ‘TPU(텐서프로세서유닛)’를 개발했고, 중국 화웨이는 2017년 세계 최초의 모바일용 AI 반도체 ‘기린 970’을 선보였다. AI 반도체는 동시에 수많은 연산을 해낼 수 있어 자율 주행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필수품으로 꼽힌다. 애플·아마존 등도 앞다퉈 전투에 참전 중이다.

‘반도체 강자 한국’만 기억한다면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AI 반도체 섹터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한국은 AI 기술력부터 수년째 미국의 80.9% 수준(전국경제인연합회 발표)에 머물러 있다. 2016년 미국의 71.8% 수준이던 중국의 AI 경쟁력이 정부 지원에 힘입어 85.8%까지 올라간 것과 대조된다. 한국 정부가 올해 AI 반도체 지원 사업에 전년보다 75% 늘어난 1253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이처럼 한국 반도체 산업이 커다란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토종 AI 스타트업 ‘퓨리오사AI’의 등장은 반갑다. 퓨리오사AI는 글로벌 AI 반도체 성능 테스트에서 아시아 스타트업으로는 유일하게 성능 지표를 인정받은 ‘무서운 신인’이다. 4월 29일 서울 신사동 퓨리오사AI 사옥에서 창업자인 백준호 대표이사를 만났다. 퓨리오사는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나오는 여전사의 이름이다. 장발의 백 대표가 전사 같은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등장했다.

AI 반도체가 주목받는 이유는 뭔가.

”AI 반도체가 있어야만 하는 세상으로 진화해 가고 있어서다. 쉬운 예로 자율 주행을 떠올려 보자. 자율 주행은 사람이 아닌 반도체가 운전하는 개념이다. 차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각종 정보가 들어오면 반도체는 즉시 주행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 번에 한 개씩 연산 처리하는 중앙처리장치(CPU) 등의 기존 반도체로는 감당할 수 없다. 우리가 개발한 AI 반도체는 사람 뇌의 신경망을 모방한 NPU(Neural Processing Unit·신경망 처리 장치)다. NPU는 한꺼번에 수십에서 수천 개의 연산을 동시에 진행한다. 인간 뇌세포가 지능적으로 처리하듯 인공 뉴런이 집단 네트워크를 이뤄 순식간에 처리하는 것이다.”

창업이란 방식으로 AI 반도체 경쟁에 뛰어든 계기가 있나.

”AMD·삼성전자 등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또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주변부 기술이었던 AI가 모든 제품·서비스의 중심에 들어오는 걸 보면서 무엇을 하든 AI 관련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창업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내가 잘하는 일(시스템 반도체 설계)과 꼭 해야 하는 일(AI)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AI 반도체를 향하게 됐다. 네이버·DSC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투자금 13억원을 받아 시작했다. 이후 80억원을 추가 유치했다.”

반도체 시장에는 초대형 플레이어가 많다. 이길 자신이 있나.

”그냥 반도체라고 하면 승산이 적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AI 반도체다. 자동차로 치면 내연기관차와 자율 주행차로 봐야 한다. 전자는 벤츠·현대차가 잘 만들지만 후자는 정보기술(IT) 기업인 구글이 앞서가지 않나. AI 반도체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다. 기존 설계 구조와 습관은 오히려 방해된다. 레거시(legacy·과거의 유산)가 없는 테슬라가 전기차를 잘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조직 자체의 강점을 소개하자면.

”AI 반도체를 잘 만들려면 실리콘 칩을 잘하고,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잘하고, 그 위의 알고리즘을 잘해야 한다. 결국 이 모든 걸 잘 다루는 인재 보유 여부가 성패의 9할이다. 퓨리오사AI는 최고 역량을 갖춘 시스템 반도체 설계 인력을 40명 이상 모았다. 모두 핵심 설계가 가능한 인재들이다. 2019년 글로벌 AI 반도체 벤치마크 테스트 ‘MLPerf’에서 아시아 스타트업 가운데 유일하게 성능 지표를 공식 인정받았다. 우리의 설계 역량을 전 세계에 증명한 성과다.”

인재 영입이 녹록지 않을 것 같은데.

”새로운 산업 분야를 개척하는 건 당대의 톱티어급 인재라는 믿음이 있다. 그들과 함께 일하려면 조직이 어젠다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봤다. 매력적인 어젠다를 전략적으로 세팅해두고 우리의 비전을 공유하는 데 주력했다. 우리 회사에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곧바로 합류한 전문가도 있다. MIT 박사 받고 한국 스타트업에 들어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그만큼 공동의 비전이 뚜렷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제품 실물은 언제 나오나.

”올해 하반기에 첫 번째 실리콘 칩이 나온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양산된다. 제한적이지만 양산까지 가는 경험을 쌓는 것이다. 제품 생산을 마치면 다음 단계 진입을 위한 스케일 업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한 후속 투자 유치도 준비 중이다. 두 번째 제품은 2021년 하반기에 나온다. 지금까지 기술 고도화와 시제품 생산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판매까지 이어가야 한다. 영속성을 확보하려면 AI 반도체 판매를 통한 수익 달성은 꼭 해내야 하는 과제다.”

시스템 반도체는 한국이 잘해본 적 없는 영역인데.

”한국 반도체 산업은 설계보다는 제조 위주로 성장했으니 당연하다. 소프트웨어 훈련 경험이 적었다. 회사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 봐도 선배들은 제조 마인드가 강했다. 뭔가 창조하려는 니즈는 적었다. 요즘 한국의 젊은 반도체 엔지니어들은 다르다. 글로벌 경험이 풍부하고 설계 역량을 갖췄다.”


[plus point]

투자자가 본 퓨리오사AI 매력 ”김봉진처럼, 회사와 함께 크는 창업자 존재”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

“한국에서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 계속 나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플랫폼 중심의 커머스 쪽 회사가 많다. 첨단기술 기반의 유니콘은 적다. 그런 측면에서 퓨리오사AI 같은 스타트업의 등장은 의미 있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니까. 국가 경제를 위해서라도 이런 회사는 성공해야 한다.

좋은 CEO(최고경영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경영자로서 그릇이 정체되지 않고 회사 성장에 따라 함께 커진다는 점이다.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가 그랬다. 창업 초기의 김봉진과 지금의 김봉진은 만나보면 깊이가 다르다.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도 비슷하다. 조직과 함께 성장하는 창업자가 있는 스타트업에는 투자할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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