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자국 반도체 공급망 재검토를 지시하기 앞서 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만 TSMC가 미국에 3㎚(나노미터·1㎚는 10억 분의 1m)를 넘어 2㎚ 생산 공장 증설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전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TSMC가 실제 3㎚ 이하 공장 건설에 나설 경우 투자금은 최대 250억달러(약 28조원)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이렇게 될 경우 170억달러(약 20조원)를 계획 중인 삼성전자의 투자 기대감이 상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전자가 20조원을 넘어서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7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최근 미국에 3㎚ 공장 건설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TSMC가 애리조나주에 120억달러(약 13조원)를 투자해 5㎚ 공장을 짓는 계획을 넘어 3㎚ 공장 설립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며 “기존에 계획 중인 1개 생산 공장에 3㎚ 등 5개 공장을 증설해 총 6개의 신규 공장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라고 보도했다.

애초 TSMC는 3㎚ 이하 최첨단 공정의 경우 대만 현지에서 운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만 내에 가뭄과 정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조 바이든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책을 약속하면서 계획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500억달러(약 56조원)를 반도체 산업 육성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 타이베이타임즈는 이날 “TSMC가 애리조나에 향후 10년에서 15년 안에 건설될 차세대 2㎚ 이하의 차세대 반도체 공장 건립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 최첨단 공정인 3㎚를 넘어 차세대 기술로 불리는 2㎚ 생산 공장 건설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만 언론들은 TSMC가 삼성전자를 포함한 경쟁사들의 추격을 따돌렸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제공

반면 삼성전자는 미국 투자 계획을 놓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오는 21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삼성전자가 이번 주 미국 내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이마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이와 관련해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오는 20일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두 번째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 대책 회의에서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TSMC의 미국 내 투자 계획이 연달아 공개되는 상황에서 매출의 2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더는 침묵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정치적인 이유로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계획 발표가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 나올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투자 계획이 발표될 경우 ‘대통령의 방미 선물’이란 의미로 평가가 한정되지만, 정상회담 이후에 발표되면 ‘정상회담의 성과물’로 의미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TSMC가 바이든 정부의 요구에 발을 맞춰 나가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삼성전자도 예상을 웃도는 깜짝 투자 계획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정부의 ‘K-반도체’ 전략에 맞춰 기존 계획에 38조원을 추가한 171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 내 투자 규모를 30조원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계획된 20조원 규모의 투자를 빨리 집행하는 것이 현재 시점에서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라며 “기술 경쟁에서 한번 밀리면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