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업계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찾기에 나섰다. 여기엔 지금까지 해왔던 ‘게임 내 결제’라는 단순한 수익 구조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심경이 담겼다. 업계는 블록체인을 기존 게임 사업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동시에 새로운 장르 개척도 가능한 기술로 인식하고 있다.
15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최근 게임사들의 주된 관심사는 단연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분산 컴퓨팅을 통한 데이터 위변조 방지 기술을 의미한다. 동등 계층 간 통신망(P2P·Peer to Peer)에 기초해 소규모 데이터들이 ‘체인’ 형태로 연결되고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모든 사용자에게 똑같은 데이터가 전송되기 때문에 한 쪽이 거래 내역을 임의로 수정하거나 누락할 수 없고, 모든 데이터는 투명하게 기록·보관된다.
예를 들어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아이템 확률 등의 정보가 블록체인을 통하면 게임 이용자들은 이를 모두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고, 게임을 운영하는 주체는 이를 임의로 조작할 수 없게 된다. 확률형 아이템 조작 논란이 원천적으로 막히는 셈이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확률형 아이템 조작 논란은 블록체인 기술 앞에서 의미가 없게 된다”라며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 조작 자체가 원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블록체인 업계 진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블록체인 기반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과 공급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고,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블록체인 게임 콘텐츠 기업인 웨이투빗을 인수했다. 웨이투빗은 가상화폐인 ‘보라’를 발행해 유통한다.
네오위즈 역시 주주총회에서 ‘블록체인 기반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업’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 ‘블록체인 기술 관련 기타 정보기술 및 컴퓨터 운영 서비스업’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네오위즈는 블록체인 서비스 관련 인력도 채용하고, 계열사인 투자 전문기업 네오플라이를 통해 블록체인 투자와 기술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네오플라이는 카카오의 블록체인 전문 계열사 그라운드X가 개발한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에 투자하고 있다.
◇ 디지털 예술에 활용했던 NFT, 게임 속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한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Non-Fungible Token)’은 게임 업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기술 분야로 꼽힌다. NFT는 그림·영상·게임아이템 등 디지털 파일 혹은 자산 등에 블록체인 기술로 만든 토큰을 꼬리표처럼 붙이는 것인데,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복제 불가능한 고유성을 갖고 있어 디지털 자산에 대한 희소성을 인정받는다. 일종의 ‘진품 감정서’라고 볼 수 있다. 실존하는 예술 작품도 디지털화해 NFT를 발급받을 수 있다.
현재 NFT의 경우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을 이용한 경매 형식으로 거래가 이뤄지는데, ‘냔 캣(Nyan Cat)’이라는 이름의 gif 파일의 경우 NFT를 통해 우리 돈으로 6억원이라는 가치가 매겨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아내이자 가수인 그라임스는 NFT가 적용된 디지털 그림 10점을 온라인 경매에 부쳐 20분 만에 65억원을 벌기도 했다.
이전까지의 아이템 등 게임 내 재화는 이용자가 돈을 결제해 얻었더라도 궁극적인 소유권은 게임사에 있어, 게임 운영이 종료되면 그 가치는 무(無)로 돌아갔다. 데이터에 불과한 아이템의 가치는 ‘삭제’하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NFT에 기반한 게임 아이템은 블록체인을 통해 데이터가 여러 곳에 분산돼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게임 서비스가 끝나도 이용자가 아이템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가질 수 있다. NFT 게임 아이템들은 이용자간 거래도 허용하고, 가치에 따라 가상화폐로 바꿀 수도 있다. 디지털 정보에 불과한 게임 아이템이 실제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를 활용한 대표적인 게임은 게임 개발사 대퍼랩스가 만든 ‘크립토키티’다.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하는 NFT 기반 게임이다. 이 게임의 이용자는 가상 브리더(동식물을 교배·사육하는 등의 직종, 또는 그 직종을 가진 사람)가 돼 가상 고양이를 키우고, 번식시킨다. 각각의 고양이는 고유 설정값을 지니며, 외형도 모두 달라 현실의 고양이처럼 서로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 게임 이용자들은 가상 고양이를 가상화폐 시장에 내놓아 사고판다. 이미 지난 2018년 우리 돈으로 가치가 10억원에 달하는 가상 고양이가 등장했다.
◇ 위메이드, NFT 시장 진출…게임 아이템·디지털 예술 작품도 거래
국내 게임사 중 블록체인에 가장 높은 관심을 보내고 있는 위메이드도 NFT 시장에 도전하기로 했다. 위메이드 자회사 위메이드트리는 최근 NFT 거래량 급증에 따라 3단계에 걸친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상장한 위메이드 가상화폐 ‘위믹스’를 토대로 제작된 게임들의 NFT 거래를 위한 거래소를 올해 상반기에 공개할 예정이다.
회사는 개발 중인 게임 ‘크립토네이도 포(for) 위믹스’, ‘아쿠아토네이도 포 위믹스’ 등부터 게임 내 NFT를 활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아쿠아토네이도 이후 출시하는 낚시 게임은 게임 내에서 획득한 물고기 NFT를 이용해 ‘아쿠아토네이도’ 안에서 교배하고, 감상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다.
이어 카카오 계열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에서 NFT를 거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한다. 게임 아이템뿐 아니라, 디지털 예술작품, 수집품 등 광범위한 NFT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내년에는 이더리움 기반 NFT 시장에도 진출한다. 김석환 위메이드트리 대표는 “그간 축적한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NFT 거래 시장의 주도적 사업자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라며 “글로벌 NFT 거래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NFT 현금화에 엄격한 국내 환경…”일방 규제는 기술 발전 저해”
다만 국내에서 NFT를 활용한 게임은 ‘반쪽’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기술 적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는 NFT를 적용한 게임 내 재화가 가상화폐와 연동돼 현금화될 여지가 있다고 보고, 관련 게임에 일괄적으로 등급분류 취소 처분을 내리고 있다. 가상화폐 특성에 따른 사행성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게임위 등급분류 취소 처분을 받은 게임사 스카이피플의 ‘파이브스타’의 경우 게임위 판단에 불복해 민간 자율심의를 거쳐 게임을 출시한 상황이다. 이어 게임위를 대상으로 한 행정심판도 청구했다. 이에 게임위 측은 행정심판 답변서에서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게임의 결과를 통해 재산상 손익(NFT 아이템 획득)이 발생한 것에 해당해 사행성 게임물로 봐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게임 업계 관계자들은 게임위가 주장하는 ‘재산상 손익 발생’은 현행 게임에서도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게임 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거래소를 통한 게임 아이템의 현금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게임위가 유독 블록체인 기술과 NFT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라며 “정부의 걱정은 알고 있지만,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과 규제 없이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고, 오히려 기술 발전에 발목을 잡는 격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