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필수적인 네덜란드 ASML사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인수 경쟁에서 업계 1위 대만 TSMC에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두 회사는 파운드리 시장 확대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더딘 장비 확보로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14일 전자 업계와 해외 언론 등에 따르면 TSMC는 올해 ASML이 생산하는 EUV 장비의 70%를 공급받는다. 미국 IT전문매체 샘모바일은 최근 “삼성전자가 EUV 공정을 위한 충분한 생산 장비 확보에 실패하면서 반도체 경쟁에서 TSMC에 패했다”며 “TSMC가 삼성을 꺾고 충분한 EUV 생산 장비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ASML의 EUV 장비 가운데 70%가 삼성전자의 라이벌인 TSMC의 차지가 됐다”며 “삼성전자는 EUV 장비 구매 대수를 빠르게 늘려가고 있지만, 이미 많은 EUV 장비를 확보한 TSMC를 단기간에 따라잡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보도했다.
EUV 장비는 반도체 원재료인 실리콘 웨이퍼(Wafer)에 회로를 그려 넣는 노광 공정에 사용된다. ASML이 독점 생산해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는데,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에 대한 기대 수요로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 연간 40대만 만들어지는 이 장비는 내년 생산량까지 이미 선주문이 돼 있는 상태다.
반도체는 회로 선폭이 좁으면 좁을수록 크기를 줄이면서 성능과 전력효율을 높일 수 있다. 전자 업계가 미세공정 경쟁을 펼치는 이유다. 전 세계에서 현재 10㎚(나노미터·1㎚는 10억 분의 1m) 미세공정이 가능한 회사는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두 회사는 현재 EUV 장비를 활용한 5·7㎚ 반도체가 주력 상품이다. 하지만 보유 중인 EUV 장비는 TSMC가 50대로, 25대를 가진 삼성전자에 두 배 앞선다.
향후 주력 제품의 생산량 증대와 3㎚ 양산을 목표로 하는 TSMC와 삼성전자는 EUV 장비 쟁탈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TSMC를 넘으려면 EUV 장비 확보는 회사 명운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ASML의 네덜란드 본사를 찾은 것도 바로 EUV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 부회장은 당시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등 주요 경영진을 만나 EUV 장비 공급 확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노력에도 삼성전자의 장비 확보는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EUV 장비를 20대 주문했는데, 올해 인도받는 장비 숫자는 그 절반인 10대에 불과하다. 기존에 보유한 25대를 합치면 삼성전자가 올해 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EUV 장비 총수는 35대다. 반면 이미 50대를 갖고 있는 TSMC는 올해 30여대를 추가해 내년부터 80대를 운영한다. 두 회사의 EUV 장비 대수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게 전자 업계 진단이다.
EUV 장비가 충분치 않으면 미세공정으로 반도체를 만들려는 고객사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진다. 반도체 수주전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럴 경우 시장점유율은 영영 격차를 좁히지 못하게 된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20%선을 넘지 못하는 것도 결국 EUV 장비 숫자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56%, 삼성전자가 18%다.
대신 삼성전자는 EUV 장비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차세대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 선보이는 3㎚ 파운드리부터는 현재 적용 중인 핀펫(finFET) 대신 칩 면적과 소비전력을 줄인 ‘GAA(Gate-All-Around)’ 공정을 적용한다. 새로운 기술을 통해 TSMC와의 기술 격차를 줄여나가겠다는 게 삼성전자의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