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만의 크레인 운영사 근무자가 관제센터에서 크레인을 원격 조종한다. 크레인 꼭대기가 아닌 사무실에서다. 크레인에 장착된 8대의 카메라에서 5세대 이동통신(5G)을 통해 보내온 영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근무자는 원격조종 콘솔 앞에 앉아 4대를 한 번에 움직인다. 자동위치인식, 자동조향, 자동랜딩, 흔들림방지 기능의 도움을 받아 교대근무 없이도 장시간 일할 수 있다.
내년부터 펼쳐질 부산항의 모습이다. 지난달 29일 방문한 부산항은 스마트항만 구축 준비로 분주했다. LG유플러스와 부산항만공사는 기업용 5G 네트워크를 올해 중순부터 도입해 하역장비, 물류창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차례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미 싱가포르, 로테르담 등 선진 항만의 컨테이너 터미널들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동화 시스템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 칭다오 항에서도 이미 5G와 MEC(모바일 에지 컴퓨팅)를 기반으로 크레인 원격제어를 진행하며 항만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반면 국내항만 중에 5G 네트워크를 구축해 하역장비 등 항만 운영에 적용하는 곳은 아직 없다.
일반적으로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물류 흐름에 가장 큰 ‘병목현상’이 발생하는 곳은 컨테이너를 쌓는 야적장이다. 이날 부산항 부두에는 수많은 배가 내려놓는 수입 컨테이너와 국내에서 해외로 나가는 수출 컨테이너들이 혼재돼 있었다.
부산항만에서는 수많은 물동량을 처리하기 위해 24시간 운영되는 터미널운영시스템(TOS)을 도입해 선적과 양하 스케줄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컨테이너를 옮기는 크레인들이 수동으로 운영되고 있어 효율이 낮다.
또 바쁘지 않은 시간대에도 새로운 화물이 어떤 적재블록의 크레인에 배정될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크레인에서 인력이 대기하고 있다. 과다한 업무로 산업재해도 빈번하다.
한 사례로 하루에 8시간 동안 25m 상공의 조종실에서 일하는 컨테이너 크레인 기사 A씨는 크레인 아래에 있는 컨테이너를 계속 바라보고 있어야 하기에 목디스크, 근육통 등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산다. 하지만 한눈이라도 팔면 아래에서 작업 중인 동료의 안전이 위협받기 때문에 참고 일할 수밖에 없다. 크레인 한 대에 기사 4명이 교대해가면서 일하지만, 주변이 어두운 새벽이나 비 오는 날에는 피로도가 더욱 쌓인다.
이 때문에 터미널 운영 시스템과 연동된 원격제어 크레인을 도입하면 인력 운영 효율성과 물류 처리량이 향상될 수밖에 없다. 이미 세계 주요 항만들이 앞다퉈 스마트항만 시스템을 도입하는 이유다.
기존 항만을 스마트항만으로 업그레이드하는데 필수적인 인프라는 5G다. 만약 원격제어 시스템 구축을 위해 유선망을 설치한다면 24시간 365일 운영되어야 할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을 일시 중지해야 하고, 광케이블로 인해 크레인의 작동반경이 제한되는 치명적인 단점이 생긴다는 게 LG유플러스의 설명이다. 5G는 2개의 크레인 주변으로 약 4개의 무선 기지국만 구축하면 된다.
5G 크레인 원격제어를 이용하면 작업장에서 떨어진 안전한 사무실에서 조종사 1명이 3~4대의 크레인을 제어할 수 있고, 작업자가 없을 때 이동이 편한 위치로 컨테이너를 미리 배치해 놓을 수도 있다. 특히 5G 네트워크를 통한 ‘저지연 영상전송 솔루션’은 4세대 이동통신(LTE)을 이용할 때에 비해 영상 전송 시간도 84%가량 단축된다.
실제 원격 관제실에서는 운영자가 PC 게임을 하듯이 모니터를 보며 컨테이너를 움직였다. 그동안은 한 명의 작업자가 한 대의 크레인만을 제어할 수 있고 조종석의 시야각 제한으로 컨테이너를 3단까지만 쌓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는데, 시야의 확보로 4단 이상 적재도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항만 운영의 생산성을 40% 이상 높일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앞으로 5G 기반 원격제어를 부산항뿐 아니라 광양항에도 구축하고, 물류창고의 3방향 지게차와 AGV(무인운반차)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서재용 LG유플러스 스마트인프라사업담당(상무)은 “크레인을 자동화시키더라도 20~30%는 사람 손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력 대체가 아닌 열악한 근무 환경을 편한 환경으로 전환하는 것이다”라며 “건설 현장에서도 원격제어 기술이 도입될 예정인데, 현재 LH공사에서 진행하는 세종시 공단에 이를 논의 중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