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균.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위암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는 김모씨는 얼마 전 헬리코박터균 감염 여부를 검사하려고 가까운 내과를 찾았다. 직계 가족이 위암 환자일 경우엔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날 위염 판정을 받은 김씨는 진료 영수증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검사비로만 4만 9300원이 나왔기 때문이다. 진찰비에 약값을 포함해 김씨는 이날 10만원 넘는 돈을 썼다.

김 씨처럼 직계 가족 가운데 위암 환자가 있는 사람이 헬리코박터균 검사를 받을 때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8월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위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까지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헬리코박터균 검사비 건보 적용 확대로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PPI, P-CAB) 제약사까지 분주해졌다. 두 약이 헬리코박터균 제거 치료에 쓰이는데, 검사비가 저렴해지면, 검사 건수가 늘게 되고, 앞으로 치료제를 처방받는 환자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7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HK이노엔은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인 '케이캡'을 헬리코박터균 제거 목적으로 건보 적용을 받기 위한 임상 시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는 6~8일(현지시간) 영국에서 열리는 유럽헬리코박터학회(EHMSG 2022)에서 기존 치료제인 란소프라졸과 케이캡의 헬리코박터균 제거 효과를 비교한 임상을 발표한다.

케이캡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헬리코박터 균 제거에 쓸 수 있도록 허가 받았지만, 아직 이 목적으로는 아직 건보에 등록되지 않았다. 헬리코박터균 감염 환자가 케이캡을 쓰려면 약값을 본인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웅제약 P-CAB제제 '펙수클루'는 아직 헬리코박터 제거 치료에 사용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지 못했다. 현재 허가를 받기 위한 임상 시험 계획을 짜고 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복지부 발표 이후 펙수클루 임상에 관심을 보이는 대학병원 교수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PPI제제 '에스원엠프'와 '에스코텐'을 보유한 대원제약은 상급·일반종합병원과 동네 내과의원 의료진, 약국 등 상대로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 두 약품은 헬리코박터균 제거에 쓸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상태다. 회사 측은 이번 건보 적용 확대로 지난 4월 출시한 에스코텐의 영업 활동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동제약은 자체개발한 PPI제제 '라비에트듀오정'과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PPI제제 '넥시움정'을 국내에 유통 중이다. 회사는 이 제품들이 임상에서 보인 치료 효과와 같은 정보를 더 많은 의료 현장에 전달하는 식으로 영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역류성 식도염, 위궤양 등 치료제는 헬리코박터균 제거 치료에 필수적으로 쓰인다. 헬리코박터균은 위산이 강할수록 저항력이 커지기 때문에, PPI제제와 P-CAB제제로 위산 분비를 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산 분배가 줄면서 헬리코박터균의 저항력이 떨어지면 클래리트로마이신 등 항생제를 사용해 균을 없앤다.

헬리코박터균 감염 여부를 검사할 때 ▲MALT 림프종 ▲소화성 궤양 ▲조기 위암수술(내시경 절제)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 등 4개 환자군만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복지부는 앞으로 위암 가족력만 있으면 건보를 적용해 검사비의 50%만 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렇게 되면 헬리코박터균 감염 증상이 없는 환자도 2만원대 돈만 내면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건보 적용이 확대되면 PPI제제와 P-CAB제제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의약품 조사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국내 PPI제제 시장은 2016년 3734억원에서 2021년 7325억원으로 성장했다. P-CAB제 시장은 케이캡이 지난해 1000억원 넘는 매출을 올리며 독주 중이다. 펙수클루는 지난 7월 출시 후 한 달 매출 10억7400만원을 기록했다.

헬리코박터학회에 따르면 국내 40대 인구 10명 중 6명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돼있다. 헬리코박터균은 위암, 위염, 위궤양 등 질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헬리코박터균을 1급 발암물질로 뽑기도 했다. 특히 위암 직계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되면 위암 발생 위험이 5배로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