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앞세워 지난해 1조7000억원에 달하는 ‘역대급’ 매출을 올린 한국화이자제약이 세무당국의 세금 부과에 불복해 조세불복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국세청은 국내 다국적 제약사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원가 부풀리기’ 의혹 조사를 진행했다. 세금을 부과 받은 다국적 제약사 중 불복 절차를 진행 중인 곳은 현재 한국화이자가 유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화이자가 국내서 벌어들인 돈으로 연구개발, 기부 등 재투자에는 인색한 데다, 한국법인 덩치 줄이기까지 나서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2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화이자는 국세청의 이전 가격 처분에 대한 조세불복 절차를 진행 중이다. 국세청은 한국화이자를 비롯해 다국적 제약사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바티스 등 일부 제약사들 역시 수백억원대 세금을 추징받은 것으로 파악되지만, 국세청의 처분에 반기를 들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화이자가 진행 중인 조세불복제도는 납세자가 행정소송 제기 전 과세 처분의 취소·변경을 청구하는 것이다. 과세 예고 통지나 세무조사 결과에 문제가 있으면 ‘과세 전적부심사청구’를 진행할 수 있다. 이미 과세 처분이 끝난 경우 ‘이의신청·심사청구’를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체납 처분 이후 적절성을 다시 따져보기 위해서는 조세심판원에 ‘조세심판청구’을 내면 된다.
한국화이자는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지 않았지만, 세금 추징액이 최대 200억~300억원대로 추산된다. 지난 2020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화이자 측은 세무당국으로부터 세무조사 결과를 통지받아 법인세비용과 잡손실로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재무제표를 보면 법인세와 잡손실은 각각 271억원, 99억원으로 총 370억원 규모다. 이는 전년과 비교해 230억원 이상 증가했다. 증가한 금액 상당수가 세무조사로 인한 추징액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국세청이 한국화이자의 과세 근거로 잡은 ‘이전가격’은 해외에 본사를 둔 국내 다국적 기업에서 주로 적발된다. 사실상 국내 생산이 이뤄지지 않는 한국지사는 글로벌 본사로부터 제품을 수입하는데 여기서 가격을 원가보다 높게 책정하는 식이다. 쉽게 말해 가격을 부풀린다는 의미다.
한국화이자가 본사인 화이자로부터 약품 등 제품을 비싸게 구매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본사는 수익을 올리는 반면, 한국지사의 경우 지속해서 수익성이 감소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지사의 세금 부담도 줄어든다.
실제 한국화이자의 매출원가율은 지난해 기준 89.9%로, 국내 다국적 제약사 중 최상위권이다. 이는 지난 2016년 70.77%에서 해마다 매출원가율이 증가한 덕이다. 2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미국 본사와 달리, 국내 법인의 영업이익이 지난해 기준 3%대에 그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유럽 등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사들의 매출원가율은 70~80%대 안팎을 기록 중이다.
화이자의 한국법인은 수익성 악화 속에서 외형만 커지고 있다. 이는 본사가 벌어들이는 돈만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의미이다. 한국화이자는 지난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앞세워 국내서 역대급 한 해를 보냈다. 지난해 매출은 1조6940억원으로, 전년보다 4배 이상 증가했고, 다국적 제약사 국내 법인 매출 1위로 올라섰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을 모두 합쳐도 셀트리온에 이은 2위다. 다국적 제약사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었다.
특히 한국화이자는 다른 다국적 제약사와 비교해 국내 투자에 인색한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기준 임상 연구비는 54억원에 그쳤는데, 이는 전년보다 26.2% 감소한 것이다. 노바티스(263억원), 한국MSD(114억원) 등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최대 5배 가까이 차이 난다. 기부금 역시 뒷걸음질하고 있다. 2019년 12억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기준 3억7100만원으로 줄었다.
한국화이자 조직 내에서는 조직개편을 통해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한국화이자가 발표한 조직 개편안을 보면 영업부서를 6개에서 4개로 축소한다. 직원들은 회사가 ‘희망퇴직’을 통해 사실상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화이자 관계자는 조세불복에 대해 “현재 진행 중인 조세심판청구는 과세당국의 과세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될 시 원칙을 확인하는 절차이다”라며 “현재 진행 중인 심판 청구에서 코로나19 관련 매출은 반영되지 않았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