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영수 신신제약 명예회장. /신신제약 제공

국내 최초로 국산 파스를 개발한 신신제약 창업주 고(故) 이영수 명예회장이 지난 6일 향년 96세로 타계하면서 신신제약의 경영권 향방에 관심이 모인다. 장남인 이병기(65) 대표가 회사를 단독으로 이끌고 있지만, 지분율이 3%에 불과하고, 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상속세를 마련할 뾰족한 방안도 보이지 않는다.

신신제약은 이영수 명예회장이 지난 1959년 창업해 60여년간 경영을 맡았다. 이 명예회장은 자녀로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데, 장남인 이병기 대표가 지난 2018년 대표이사로 취임하기 전까지 이 명예회장의 맏사위인 김한기(69) 신신제약 회장이 회사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왔다.

이병기 대표가 현재 경영을 맡고 있지만, 김 회장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고려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지난 1987년 신신제약에 입사, 2003년 대표이사를 맡았다. 2000년대 제약사들이 파스형 관절염 치료제를 출시해 신신파스 매출이 정체되자, 중앙연구소를 세워 경쟁력 있는 파스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그래픽=이은현

이 대표는 서울대 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해 미국 미시간대에서 산업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대표이사로 취임하기 전까지 27년 동안 명지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신신제약에선 비상임 감사와 신사업개발 이사 정도의 직함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병기 대표가 2018년에 대표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김 회장과 이 대표는 각자 대표이사를 지내다가 2020년 이영수 명예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지난해 이병기 대표이사가 지난해 단독 대표로 취임하면서 사위 경영에서 장남 경영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사이 김한기 회장도 당시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신신제약 주주 구성을 봐도 이병기 대표의 지분율은 3.63%로 김한기 회장의 지분(12.63%)이 훨씬 많다. 이 명예회장의 둘째 딸인 이명옥씨가 4.26%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이를 합해도 이 대표 일가의 지분보다 김 회장의 지분이 더 많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남건씨도 0.1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명예회장이 보유한 주식 약 400만주(26%)를 이 대표에게 전액 상속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고인의 유언 없이 법정 상속분대로 상속한다면 지금 상황이 유지된다. 유언이 없는 경우 상속이 될 때를 기준으로 한 3개월 평균으로 법정 상속분에 따라서 자녀들에게 상속하게 된다. 26%를 네 자녀가 1:1:1:1로 나눠 가져야 한다.

지분을 모두 아들에게 상속한다고 하더라도 세금이 문제가 된다. 이 명예회장이 보유한 주식 400만주는 전날 종가(5210원)를 기준 210억원에 이른다. 법정 최고 상속세율(30억원 이상은 최고 세율) 50%를 적용하면 이 대표를 포함한 상속인은 약 100억원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신신제약이 1년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은 약 403억원인데,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빚인 유동부채도 역시 378억원에 달한다. 신신제약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10억원 가량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세무학회장)는 “고인에게 받은 주식을 현금화해서 상속세를 내야 하지만, 이 경우 경영권 방어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한국은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많은 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하고 회사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며 “해외 사례들처럼 상속인이 상속받은 지분을 팔았을 때 상속세를 매기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 명예회장의 유언장이나 이 명예회장 지분을 두고 일가가 어떻게 합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신신제약 관계자는“전달받은 바 없다”고만 말했다.

12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신신제약 사옥. 이 곳은 연구개발(R&D) 등에 쓰이고 있다. /변지희 기자

신신제약은 제2의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신제약은 파스 같은 첩부제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절반(49.3%)에 달한다.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입가능한 일반의약품 및 의약외품 매출은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일반의약품은 마진을 높게 붙일 수 없어 영업이익률이 낮다.

신신제약은 지난 2020년 이후 2년째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신신제약 매출액은 77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3% 늘었지만, 1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신신제약은 건강기능식품, 전문의약품 등의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 확대와 패치용품의 기술적 장점을 바탕으로 치매완화, 요실금, 수면유도용 패치 등 전문의약품 시장 진출을 내세웠지만 요원하다.

이 명예회장은 1927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울 흥국초등학교, 경성상업학교를 거쳐 중국 랴오닝성 다롄고등상업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이후 여러 제약, 화학 업체를 다니다 1959년 신신제약을 세웠다. 이 명예회장은 창업 첫해에 한국 최초 파스인 ‘신신파스’를 만들었다.

당시 파스는 일본에서 밀수입하던 고가 제품밖에 없었는데 그가 천연고무 기반의 첩부제 제제기술을 도입했다. 신신제약은 1983년 완제 의약품으로는 국내 제약사 최초로 ‘100만불 수출의 탑’을 달성했으며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 2009년 한국창업대상 등을 받았다.

왼쪽부터 김한기 회장, 고(故) 이영수 명예회장, 이병기 대표이사 사장. /신신제약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