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뉴스1

전 세계적인 원자재·물류비용 폭등에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의료기기 업체들이 지난 5월 정부에 정책적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관련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가 공석인 탓에 실무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각종 비용 상승 문제로 위기에 처한 의료기기 업체들의 구호 요청에 정부가 두 달째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업체들은 제도적으로 고정돼 있는 의료기기 가격을 한시적으로 일괄 상향 조정해달라는 등 제안을 내놓고 있지만, 주요 결정권자인 복지부의 장관 자리가 비어있어 논의가 더딘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의료기기 업체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려면 결국 재정을 써야 하는데, 장관이 없는 상태에서 논의를 빠르게 진행하기 어려운 사안이다”라며 “실무자들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다 보니 업계 차원에서 좌담회나 공청회를 열어 이들을 초청하기도 힘든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지난 5월 12일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직접 방문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요청하는 제안서를 전달했다. 제품 생산에 드는 비용이 너무 올라 이대로면 의료 현장에 필요한 제품을 공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협회는 ▲의료기기 보험상한가 10% 일괄 상향 ▲환율, 물가 등 외부 상황에 보험상한가가 연동되는 시스템 구축 등을 요청했다. 보험상한가는 의료기기에 건강보험이 적용될 때 제조사와 정부가 합의 하에 고정시킨 제품 가격이다.

보험상한가가 정해지면 제조사가 제품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지금처럼 원자잿값이 올라 생산 비용이 치솟으며 이익률이 떨어져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다. 일부 업체들은 이익률이 낮은 제품의 생산과 공급을 당분간 중단하는 것까지 고민하고 있다.

혈액 등 환자 샘플 채취용 도구를 만드는 한 외국계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는 “현 상황이 더 길어지면 수익성이 낮은 품목은 한동안 생산과 공급을 모두 멈춰야 할 것 같다”며 “지금까지는 환자들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서 사명감을 갖고 어떻게든 제품을 만들려 노력했지만, 이 이상 생산·공급을 유지했다간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울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한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는 “의료기기 업체 대부분은 일부 수익성이 낮은 값싼 제품을 팔면서 생긴 손해를 고가 제품 판매로 만회하는 수익구조를 갖는다”며 “경제위기로 전체적인 제품 판매가 부진해지면 수술용 핀셋, 메스처럼 이익률이 떨어지지만 의료 현장에서 핵심이 되는 제품부터 생산·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의료 현장이 마비되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가 빠르게 손을 써야 하지만, 주무부처인 복지부 장관 자리가 빠르게 채워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은 끝에 최근 자진 사퇴했다. 정호영 전 장관 후보자도 자녀 특혜 등 각종 논란에 밀려 지난 5월 23일 자진해서 사퇴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관 자리가 비어있는 것은 이번 논의 진행과 무관한 사안이다”이라며 “실무자들이 계속해서 업계와 소통하며 해결책을 논의 중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협회가 요청한 사항은 제도적 수정이 있어야 실현 가능한 내용이다”라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 거쳐야 할 단계가 많기 때문에, 요청이 들어왔다고 해서 곧바로 추진할 수 없는 사안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