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 마포의 A약국은 위장약 ‘카베진’을 1만7000원에 팔았다. 1만5000원 안팎이었던 가격을 올해 초 2000원 올린 것이다. 약국에 가격 인상 안내문은 없었다. 가격을 올린 이유는 한국코와가 약국에 파는 공급가를 올해 2월 10%가량 올렸기 때문이다. 이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는 “지난해 샀던 재고는 예전 가격 그대로 모두 팔았다”며 “(1만7000원으로) 판매하는 약값은 오른 도매가격에 샀으니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상비약 가격 연이어 두 자릿수 인상
가정상비약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이날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1월 녹십자 상처치료 연고제 ‘바스포’ 공급 가격이 1970원에서 2090원으로 5%가량 오른 데 이어 지난달 일양약품은 자양강장제인 ‘원비디’ 공급가를 12% 올렸다. 일양약품은 같은 시기 소화제인 ‘노루모’와 ‘크리맥’의 공급가도 올랐다. 인상 폭은 20%, 30%에 이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근 녹십자는 자사 파스 제품인 ‘제놀쿨’ 가격을 오는 7~8월 중 10% 올리겠다고 의약품 유통업체 측에 전달했다. 광동제약도 7월 중 음료형 자양강장제인 ‘쌍화탕’ 가격을 15%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상비약으로 두는 일반의약품은 의사 처방을 받지 않고도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제품이다. 해열진통제나 감기약·소화제의 경우에는 편의점에서도 판매하지만, 주로 약국에서 판매한다. 약국 공급 가격이 오른 만큼 약국들은 연쇄적으로 판매가를 올릴 전망이다.
약국은 제약사로부터 공급받는 가격에 일정 이윤을 붙여 팔기 때문에 약국마다 가격이 조금씩 다르다. 현재 1500원인 ‘제놀쿨’은 1800~2000원으로, 500원 수준인 ‘쌍화탕’은 최대 700~1000원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 “소비자 저항 적어” 제약사 주력제품 대폭 인상
올해 들어 가격이 오른 약들은 대부분 각 제약사의 주력 제품이다. 소비자들의 인지도도 높은 편이다. 일양약품의 ‘원비디’와 광동제약의 ‘쌍화탕’은 약국에서 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판촉용으로 주로 쓰여서 저렴한 가격이 상징인 제품들이다. 코로나19로 수요가 폭증한 감기약도 있지만, 몸에 붙이는 파스 형태의 소염진통제, 소화제도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대웅제약 간기능 보조제 ‘우루사’ 가격도 조만간 인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달 초에는 동화약품 연고제 ‘후시딘’ 가격이 오른다는 소문도 돌았다. 의약품 유통업체 관계자는 “감기약, 연고, 음료, 파스 등 품목을 가리지 않고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웬만한 의약품 가격이 올해 15% 안팎씩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사들은 가격 인상의 이유로 “물가 인상으로 원재료값이 올랐고, 인건비 부담도 크다”고 말한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4.8%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계속 오르고, 국제유가도 내려가지 않는 등 물가 인상 요인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이 앞서 언급한 일반의약품을 1년에 한두 번 정도만 사기 때문에 가격 저항이 크지 않은 점을 제약사들이 악용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라면이나 소주처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을 대폭 인상해도 소비자들이 체감하지 못한단 것이다. 전날 정부가 물가 인상 부담을 낮추기 위해 발표한 ‘민생안정대책’에서도 의약품은 포함되지 않았다.
약국 입장에서도 ‘공급가격이 올랐다’라고 하면 되니 큰 저항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가정상비약의 경우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보거나 약국 권유에 따라 구매하기 때문에 가격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며 “공급가격 인상으로 브랜드 파워가 있는 제약사는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