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바이러스 감염병 치료제 개발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위해 발주한 ‘중장기 연구전략 수립’ 용역 비용은 2억원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코로나 대유행 이후 연구비 지원 방식으로 백신‧치료제 개발에 나섰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태다. 정부가 말만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해 놓고, 생색내기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6일 국가 연구개발(R&D) 통합공고에 따르면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은 지난달 26일 ‘바이러스성 감염병 치료제 개발을 위한 중장기 연구전략 수립’ 용역을 발주했다. 이번 연구과제는 1억5000만원 규모로 ‘국가 주도의 치료제 개발’을 골자로 한다.
보건원은 제안서에 “코로나19 이후 변이 바이러스 출현으로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이 요구되고 있지만, 실용화에 이르기까지는 제한이 많았다”며 “국가주도의 치료제 개발 전주기 단계별 종합 추진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를 계기로 신종 감염병에 대응하려면 국가 주도로 신속하게 치료제를 개발하는 체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보건원은 오는 5월부터 단계별 추진 전략과 실행 방안을 수립해, 오는 11월 관련 예산 확보를 위한 국가연구개발사업 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감염병 치료제를 개발하겠다면서 1억5000만원짜리 용역을 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신약 개발에 수조원 수천억원의 예산이 드는데, 2억원도 안되는 용역으로 제대로 된 계획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감염병 치료제 개발을 하겠다며 자잘한 자투리 예산을 쓰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이 정도 예산으로 계획을 세울 거라면 전문가 몇 명 모아 놓고 간담회 한 번 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억5000만원짜리 용역은 100번을 해도 제대로 된 결과를 내기 어렵다”며 “감염병 대응이라는 중차대한 사업을 추진한다면 용역 발주 한 건에 100배 넘는 돈을 쓰더라도 제대로 된 청사진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 주도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미국 정부는 이른바 ‘워프 스피드(Warp Speed) 작전’에 20조원 규모의 예산을 한번에 쏟아 넣었다. 반면 정부는 지난해 백신 개발 지원 예산으로 687억원을 잡았다. 이는 코로나 발생 이후 지급한 재난지원금 총액 52조원의 750분의 1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 신종플루 유행 당시 감염병 연구를 한다고 6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독감 통계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며 “감염병 치료제를 진짜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보건복지부와 질병청이 틀을 잡아 연구개발(R&D)비를 집행하고, 필요하다면 산업계가 들어올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 지적처럼 코로나 유행 이후 정부 지원금을 받은 국내 제약사와 바이오벤처가 백신,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태다. 셀트리온(068270)의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는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듭하면서 현재 치료 효능이 떨어져 쓰이지 않고 있고, SK바이오사이언스가 백신 임상 3상 중이지만, 백신 접종률이 90%를 넘은 상태라 시기적으로는 늦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머지 국내 기업의 백신 치료제 개발은 대부분 임상 2상 단계에 머물렀고, 그러는 사이에 이 기업들의 주가만 임상 진행에 따라 널뛰었다. 2015년 메르스 때도 삼성생명공익재단 지원으로 백신 개발을 시도했으나 흐지부지 끝났다. 국가신약개발사업단 묵현상 단장은 지난달 기자 간담회에서 “감염병 영역 신약 개발은 시장 실패 영역이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자금을 투입해 신약 개발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질병청 산하의 감염병 연구소를 예로 들었다.
다만 전병율 대한보건협회장(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질병청의 이번 용역은 치료제 개발 플랫폼을 마련하기 위한 전략 수립 차원으로 보인다”며 “치료제 개발은 장기 과제로 차근차근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