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환자인 60대 중국인 A씨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한 번 피가 나면 출혈이 멈추지 않는 혈우병은 희귀난치성 질환이라서 약값 자체가 비싸고 계속 복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수십억원대의 약값이 든다. A씨가 청구받은 진료비는 32억9500만원이었지만 본인 부담금은 3억3200만원이었다. A씨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됐기 때문이다. A씨는 최근 5년 건강보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외국인이었다.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윤 후보는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린 중국인은 약 33억원의 건보 급여를 받았으나 약 10%만 부담했다”고 밝혔는데, A씨가 바로 이 사례자다.
윤 당선인은 최근 5년간 외국인 건보 급여지급 상위 10명 중 8명이 중국 국적자였다는 점도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2478억원이었던 외국인 건보 흑자 규모가 2020년 5715억원으로 증가한 것을 이유로 윤 당선인의 주장을 ‘가짜뉴스’ ‘외국인 갈라치기’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주장처럼 지난 4년간 전체 외국인 건보 재정 수지는 1조4095억원의 흑자를 냈다. 문제는 외국인 중에서도 중국 국적 가입자에 대한 건보는 같은 기간 적자를 기록해 왔다는 점이다. 국민건보공단이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비례)에 제출한 ‘가입자 국적별 재정수지’를 보면, 지난 4년간 중국 국적 가입자에 대한 건보 적자는 3843억원으로 집계됐다.
2017년 1108억원이었던 적자 폭은 2018년 1509억원으로 늘었다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방문길이 막히자 2019년(987억원)과 2020년(104억원)에는 감소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인 가입자들은 지난 4년 동안 1조8630억원을 보험료로 냈고, 건보공단이 이들의 치료비 등으로 2조2473억원의 급여비를 썼다.
이를 역산하면 보험료로 낸 돈 대비해서 받아 간 돈이 121%에 달했다. 100%가 넘으면 건보 재정이 그만큼 손해를 봤다는 뜻이다. 이는 가입자 수 기준 2위 국가인 베트남(68.2%), 4위인 미국(42.0%), 12위인 일본(61.8%)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다.
윤 당선인의 발언 취지도 국내 건보 혜택을 일부 외국인들이 ‘원정 의료’ 등으로 악용하지 않게 정비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중국인 건강 보험 재정이 적자인 원인으로는 ‘피부양자’ 자격 조건이 꼽힌다. 건보공단은 질병 치료 목적으로 입국해 건보에 가입하는 사례를 차단하기 위해 입국 후 6개월 이상 국내에서 체류해야 건보 지역가입 자격을 준다.
하지만 피부양자는 거주기간과 관계없이 입국하기만 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일부 외국인의 ‘얌체 수급’에 동원돼 왔다. 중국은 국경이 인접해 있어 왕래가 편하기 때문에 혜택을 쉽게 볼 수 있는 구조다.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실이 지난해 9월 공개한 ‘최근 5년 동안 건강보험 수급액이 많은 외국인 10명’ 가운데 7명이 중국인이었고, 7명 중에서 4명이 피부양자였고 3명은 지역가입자였다. 직장 가입자는 한 명도 없었다.
공단은 외국인 건보 가입자 가운데 부당·과다 지급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고 반박했지만, 보험 가입한 해부터 수억원의 혜택을 받은 환자가 수두룩했다. 수급액이 많은 외국인 10명 가운데 3명은 혜택을 받고 난 후 건강보험 자격조차 유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고, 보험 가입 6개월도 되기 전부터 진료 혜택을 받은 사람은 7명에 이르렀다.
글리코젠 축적병을 앓는 20대 중국인 가입자는 피부양자로 2017년 3월에 건보에 가입해 그해부터 지난해까지 7억1655만원의 진료비 혜택을 받았다. 유전성 척수성 근위축 질환을 앓는 10세 미만의 중국 국적 어린이는 2018년 건강보험 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했고, 그 해부터 지난해까지 5억8261만원의 진료비 혜택을 받았다.
특수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입국해 국내 건강보험에 가입한 외국인과 건보에 피부양자를 잔뜩 등록하는 외국인들 때문에 내국인들이 상대적 박탈감 느낀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이런 피부양자 혜택을 외국인 가입자 전체로 볼 일은 아니다. 2019년 12월 기준 직장가입자 1인당 피부양자는 내국인은 1.05명, 외국인은 0.39명이다.
그러나 반대로 피부양자를 무더기로 등록해 건보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부 외국인 가입자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 국적 가입자 가운데 피부양자로 2017년 8명, 2018년 8명, 2019년 9명을 각각 등록한 경우도 있었고, 한 미국인은 2020년 배우자와 자녀 9명을 피부양자로 등록해 적발됐고, 지난해 7월에는 배우자와 자녀 9명을 등록한 시리아인도 있었다.
이렇게 무더기로 등록한 피부양자가 진짜 부양가족인지 검증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2000년대 후반 중국인 브로커가 환자를 모아 입국시킨 후 명의를 도용해 대한민국 국민인 것처럼 꾸며 치료받아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여기에 정부는 올해 7월부터 국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의 경우 연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자격을 박탈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외국인과 내국인의 건보 혜택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외국인 직장가입자의 해외 피부양자는 국내 소득이 잡히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윤 당선인이 공방을 벌였던 만큼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이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문화분과가 구성되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성실한 외국인 직장 가입자가 아닌 국내 제도를 악용하는 일부 외국인 가입자 혜택에 대해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