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대선 확진자 사전투표에서 대혼란이 벌어진 근본적 원인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확진·격리 유권자 규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선관위가 이번 대선 투표를 준비하면서, 확진·격리자 유권자 규모를 자체 추산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관위가 방역 주무부처와 면밀한 협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대선 투표를 대처해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선관위 예측한 확진 유권자 100만명 이미 넘어서
8일 방역당국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이날 0시까지 만 18세 이상 확진자 수는 121만8369명으로 집계됐다. 오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본투표에서 확진자 투표를 해야 하는 유권자는 3일부터 9일 당일까지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확진으로 격리 통보를 받은 사람이다.
이날 7일 누적 확진자 수는 전날 기준 확진자(117만4121명)에서 4만4248명이 늘어났다. 이번 주 하루 확진자가 20만명대를 웃도는 것을 고려하면 오는 9일 확진 격리 유권자는 130만명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런 수치는 선관위의 예측 규모를 한참이나 벗어난 것이다. 선관위 김세환 사무총장은 지난달 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확진·격리 유권자 규모를 묻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수치적으로 정밀하게 또 해 봤다”며 “그래서 100만 명일 경우를 가장 최대치(로 잡았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김 총장의 ‘확진·격리 유권자 100만명’ 발언은 방역당국이 예측한 수치가 아닌 선관위 자체 추산으로 나타났다. 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영 의원실에 따르면 선관위 관계자는 김 총장의 ‘확진·격리 유권자 100만명’에 대해 “질병청이 예측한 확진자 수치를 토대로 (선관위가) 추산했다”고 답했다.
◇ 선관위 확진자 숫자 통계로 단순 계산
선관위와 방역당국은 대선 투표와 관련해 지난 1월 20일과 24일 공식회의를 한 후 이날까지 추가 회의는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18일 선관위 협조요청으로 방대본이 지난 21일 관련 내용을 회신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사항은 선관위가 결정했다는 것이 방역당국의 설명이다.
선관위는 또 이번 사전 투표에서 산술적 단순 셈법으로 전체 확진자와 격리자를 투표소 숫자로 나눠 확진 격리 유권자 수를 투표소당 최대 20명으로 잡았다. 대도시 권역을 뭉텅이로 나누고, 그 안에서 지역적 편차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김 총장은 “서울·경기·인천이 발병률이 제일 높은데, 서울 발병률로 따지면 (확진·격리 유권자는) 20만명을 서울 투표소별로 평균을 내면 한 20명 남짓이다”라며 “100만명이라고 해도 1만4400개 투표소에 분산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처럼 투표소마다의 사정은 그렇지(혼란스럽지) 않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이영 의원은 “방역당국은 2020년 1월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이후 확진자 발생 통계를 공개하고 있으며 지역별, 연령별 통계도 관리하고 있다”며 “선관위가 마음만 먹었으면 해당 정보를 받아서 전국 1만4000여 사전 투표소 가운데 확진자 투표 인원을 예측해 혼란에 대비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선관위는 전날 오후에도 질병청에 돌연 확진자의 투표 당일 외출시간을 오후 5시 30분에서 오후 5시 50분까지 20분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전날 오전 확진자 외출시간을 오후 5시 30분으로 협의했지만 ‘격리자 대기 시간 최소화’를 이유로 방역당국에 외출 시간을 변경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확진자 투표는 일반 유권자의 투표 시간이 끝난 후인 오후 6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시행된다. 외출 시간이 축소되면, 이동 시간이 줄어 투표를 하지 못하는 확진 유권자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논란에 선관위 관계자는 “방역당국과 첫 회의 이후 실무 선에서 지속적으로 협의해 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