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의료기기 업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으로 나가는 관문이자 국내 의료기기 업체의 주요 수출국으로 꼽힌다. 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 오스템⋅삼성메디슨 “수출길 막힐라”
4일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국내 270개 업체가 총 2억5799만달러(약 3105억원) 규모의 의료기기를 러시아에 수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에는 154개 업체가 2996만달러(약 361억원)를 수출했다. 의료기기 산업 규모를 고려하면 적지 않은 규모다.
수출 품목별로는 치과용 임플란트가 3883만달러(약 468억원)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초음파기기(3100만달러), 생체재료(2956만달러), 감염병검사시약(2719만달러), 의료영상장치(934만달러)순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국내 업체들의 감염병검사시약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수출 규모는 늘어났을 것으로 추산된다.
러시아에 의료기기를 수출하는 주요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이번 사태 이후 한국에서 러시아로 보내는 물량을 늘리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 강도가 높아지면 하늘길이 막힐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오스템임플란트에 매출 기준으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이다. 오스템임플란트의 러시아 시장 매출은 지난 2020년 356억원, 지난해 551억원(잠정)을 기록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지난해와 지난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치과의사를 대상으로 한 러시아 최대 임플란트 포럼을 열기도 했다.
러시아에 초음파 영상 진단기를 수출하는 삼성 메디슨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 메디슨은 1992년 러시아 과학 조사 연구소와 합작 벤처를 설립한 메디슨을 삼성이 인수한 것이다. 한국산 초음파진단기는 러시아에서 고가 고품질 기기로 알려져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인 오기환 전무는 “러시아에 대한 의약품과 의료기기 수출대금 결재 제한조치는 없지만 앞으로 러시아 경제제재 추가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며 “의료기기 업체들은 이번 사태를 예상하고 지역 법인을 철수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 유럽의 관문 우크라이나 코로나19 임상 영향
업계는 러시아에 대한 수출 대금 결재 제한 등 국제사회의 제재가 구체화된 것이 없는 만큼 당장 피해는 없을 것으로 봤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초음파 영상 진단기와 같은) 고가의 의료기기는 주문을 받으면 그 때부터 제작에 들어가는 구조다”라며 “우크라이나 사태가 당장 해외 매출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19년 이란 사태를 겪으면서, 국제사회 제재에 대한 대응은 어느 정도 대비가 됐다”며 “우회로를 모색하겠지만, 제재가 적용되기도 전에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사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러시아 시장에서 국내 의약품 비중은 낮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낮은 대신 의료 수준은 준수해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하는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 임상을 진행했다.
국내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신약 임상을 하는 제약사는 신풍제약과 종근당,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이 있다. 신풍제약은 지난 14일 코로나 치료제 후보물질 피라맥스의 다국가 임상 3상 지역에서 러시아를 제외하고 콜롬비아를 추가했다고 공시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우크라이나에서 예정한 99명에 대한 임상을 마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