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경기 과천 렛츠런파크에서 열린 한국마사회와 함께하는 사랑의 헌혈 행사에서 송철희 한국마사회 회장 직무대행(오른쪽)과 직원들이 헌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병원에서는 수혈용 혈액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국내 제약사는 올 한해 원가보다 싼 값에 혈액을 받아 간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사에 공급하는 혈액 가격은 혈액 공급을 사실상 독점한 대한적십자가 제약사와 단독 협상으로 결정하는 구조다. 대한적십자가 국민이 자발적으로 한 헌혈을 갖고 제약사 배를 불려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14일 대한적십자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혈장판매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적십자사는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헌혈 받은 혈액의 40.9%를 약품 원료용으로 제약사에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적십자는 지난 2017년부터 올해까지 평균 44%의 혈액을 제약사에 판매했다.

적십자는 최근 5년 동안 녹십자(006280)와 SK플라즈마에 동결혈장 10만3953L(리터), 신선동결혈장 52만374L, 성분채혈혈장 42만7390L를 공급했다. 이는 성인 남성 608만명이 헌혈한 양에 해당한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실

그런데 적십자가 이를 재료비·인건비·관리비 등이 포함된 원가보다 적게는 23%, 많게는 35% 싸게 제약사에 판 것으로 확인됐다. 적십자의 원가 산출 자료를 보면 적십자는 제약사에 동결혈장은 L당 6만846원, 신선동결혈장은 4만9980원, 성분채혈혈장 3만8382원가량 원가보다 싸게 팔았다. 신선동결혈장은 혈액을 채취한 후 6시간 이내에 혈장성분을 분리해 동결시킨 것이고, 동결혈장은 혈액 채취 후 6시간 이후에 혈장성분을 분리해 동결한 것, 성분채혈혈장은 혈액을 채취한 후 혈장성분을 분리한 것이다. 모두 의약품용 혈액으로 분류된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수혈용 혈액이 부족해지면서, 병원에서 수술에 쓰이는 수혈용 혈액 값이 해마다 2.5% 넘게 오른 것 비교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가격 차이는 병원에 쓰이는 수혈용 혈액과 제약사에 공급하는 분획용 혈장 가격 결정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현행법에 따르면 수혈용 혈액 가격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하게 돼 있지만, 분획용 혈장 가격은 법적 근거 없이 적십자와 제약사 간 가격 협상으로 결정돼 왔다. 문제는 이렇게 헐값에 혈장을 판매하는 것이 적십자와 제약사 간의 묵은 관행이라는 점이다. 적십자는 지난 2019년 감사원으로부터 혈장 가격 인상이 필요하다는 감사 결과를 받았고, 지난 2020년 국정감사에서 적십자 회장이 국회 복지위에 직접 출석해 “가격을 조정하겠다”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실. /대한적십자사 제출

김원이 의원은 “국회와 감사원이 여러 차례 지적했는데도, 적십자와 보건복지부가 서로에게 잘못을 떠넘기며 헐값에 혈장을 계속 판매해 온 것이 이번에 다시 확인됐다”며 “국가가 직접 나서, 혈액관리원 등 국가기관을 통해 혈액공급 및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