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유행이 두 달째에 접어든 가운데 정부가 발표한 ‘거리두기 4단계’ 방식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헬스장 음악 빠르기 같은 황당 세부 지침은 논란 끝에 폐지됐지만,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운행은 허용하면서 택시 4명 탑승은 막는 등 적용 기준이 납득이 되지 않는 모호한 지침은 그대로다.
방역 전문가들은 “과학적 근거나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방역 지침들로 국민들이 지치고 있다”며 “젊은 층의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위드 코로나(코로나와 공존)로 정책을 전환하려면 터무니없는 지침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했다.
◇ 야외에서 그룹 운동 했는데 샤워는 못해
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등 정부가 내놓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은 ‘사적 모임’ 인원과 영업장 운영 시간을 제한하는 큰 틀에서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원 제한’이다. 현행 거리두기 지침에서는 식당 등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할 때 2인, 4인, 접종자 포함 6인 이런 식으로 출입을 막는다.
전병률 차의과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현행 거리두기 방식은) 엉망진창, 뒤죽박죽이다”라며 “20명 좌석이 있는 식당에 2명씩 10개 팀이 들어가 식사를 하는 것과 10명씩 2개 팀이 들어가는 것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느냐”라고 했다. 서울 중심가에서 오후 6시 이후 식당에서 2명씩 여러 팀이 다닥다닥 붙어 식사하는 풍경은 흔하다.
전 교수는 장례식장·결혼식장 인원제한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현행 거리두기 지침에서 장례식장·결혼식장은 49명까지 허용하고, 결혼식장의 경우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조건으로 99명까지 모일 수 있도록 했다. 전 교수는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 모두 마스크를 다 쓰고 있는데, 인원 제한을 두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전 교수는 실내체육시설의 샤워 금지도 고쳐야 할 대표적 지침으로 꼽았다. 현행 지침에서 수영장은 샤워가 가능하지만 헬스장⋅골프장은 안 된다. 수영장을 갖춘 헬스장은 샤워 시설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샤워를 한다고 해도 단속 대상이 아니다.
전병률 교수는 “목욕탕은 거리두기 4단계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데, 목욕탕보다 밀집도가 떨어지는 골프장 샤워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수도권 골프장에서 샤워 금지 조치를 내리자 골퍼들이 골프장 인근 모텔을 빌려 샤워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 “백신접종 독려하려면 황당지침부터 바꿔야”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샤워시설의 인원을 제한하는 것도 아니고, 운영 자체를 막아버리는 규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 교수는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행위를 제한하려면, 해당 시설의 체류 시간과 영업장의 공간, 환기 등을 따져서 제한을 하고, 접종 완료자는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밖에 서울 수도권 지하철은 꽉꽉 채운 채 운영하면서, 추석 연휴 방역을 목적으로 좌석제인 KTX를 창측쪽 좌석만 허용하고, 학교는 문을 닫으면서 사설 학원은 오후 10시까지 문을 여는 것, 추석 연휴 때 집 안에 8명 모이는 건 괜찮고, 성묘를 제한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 지침으로 꼽힌다.
정 교수는 “이런 비과학적인 방역지침으로 국민들만 피곤하다”며 “위드 코로나로 가려면 근거도 없고 현실에 맞지 않는 거리두기는 새로 짜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실내외를 구별하고, 환기 상태와 영업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체류 시간 등을 고려한 새로운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봤다.
전병률 교수는 이런 과도한 규제를 백신 접종 완료자에게 푸는 방식으로 젊은 층의 백신 접종을 유도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야구장 같은 실외 스포츠시설은 ‘백신 접종 완료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백신 접종을 마쳐서 면역을 갖춘 사람이 경기를 볼 때 마스크까지 잘 갖춰 쓴다면 큰 문제가 생길 이유가 없다.
정 교수는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굳이 쓸 이유가 없고, 야외 맥주 테이블을 제한할 이유도 없다”라며 “차라리 과거 식당에 흡연석·비흡연석 구분했듯이 접종완료자 전용석을 만드는 것도 방안이다”라고 했다. 정 교수와 전 교수는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되기 직전 본부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