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휴대전화 카카오톡(왼쪽), 네이버 앱에 서울 지역 아스트라제네카(AZ) 잔여 백신이 표시되고 있다. 정부는 이날 30세 이상 희망자에 한해 AZ 잔여 백신 접종을 허용했다. 그동안 AZ는 혈소판 감소성 혈전증(TTS) 발생 우려로 50세 이상만 맞도록 제한했었다. /연합뉴스

정부가 13일부터 남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30~40대도 맞을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밝히면서 30~40대의 휴대전화 앱에도 AZ 잔여 백신이 대거 뜨기 시작했다. 정부가 지난달 젊은 층은 AZ 백신을 맞으면 혈소판 감소성 혈전증(TTS) 부작용 우려가 있다며 접종 권고 연령을 ‘50세 이상’으로 올린 지 44일 만이다.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예방접종전문위원회에서 AZ 백신 접종 권고연령은 50세 이상으로 유지하되, 30세 이상 연령층에 대해서도 접종을 희망하면 맞히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재 AZ 백신은 국내에선 50세 이상만 맞도록 권고하는데 희망자에 한해서는 30세 이상도 맞을 수 있도록 제한을 푼 것이다. 지난달 정부의 접종 권고 연령 상향 조정 발표로 화이자 교차접종만 가능했던 50세 미만의 AZ 백신 1차 접종자도 앞으로 원한다면 2차 접종에서 AZ를 맞을 수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이날 “30세 이상 전체에 AZ 백신을 접종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자에 한해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라며 “희망자에 예방 접종의 이득과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 30세 이상 AZ 잔여 백신 접종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는 것이다.

정 청장 말대로 정부의 이번 결정은 AZ 백신 권고 연령은 그대로 둔 채 허용 연령을 추가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한 달전 ‘국민 안전성’을 이유로 결정한 내용을 또 뒤집은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 4월 AZ 백신 권고 연령을 ‘30세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을 때도, 결정 직전까지 ‘혈전증 우려는 경미하다’고 했다. 그러다가 3개월만인 지난 7월에는 또 별다른 설명 없이 ‘혈전증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접종 권고 연령을 ‘50세 이상’으로 높였다.

정부가 이렇게 결정을 뒤집은 근본적 원인은 ‘백신 공급난’ 때문이다. 4차 대유행으로 백신 접종 필요성은 커지는데, 미국 모더나 백신은 공급 차질을 빚고, 이로 인해 화이자 백신의 접종 간격을 6주까지나 연장하는 상황에서, 정부 지침으로 멀쩡한 AZ 백신이 버려진다는 지적이 최근 나왔다.

국회 백종헌 의원실(국민의힘)을 통해 받은 질병관리청 ‘폐기 백신 현황’에 따르면 올해 들어 AZ 백신 378바이알(병)이 폐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런 폐기 현상은 최근 들어 가속화됐다. 지난 7월 한 달 ‘0건’ 이었던 AZ 폐기 물량은 8월 1일부터 9일까지 86바이알로 급증했다.

주된 폐기 이유는 ‘백신온도이탈’이었다. AZ 백신은 한 번 뚜껑을 따면 6시간 이내에 11명을 맞혀야 한다. 6시간 안에 11명을 찾지 못한 나머지 물량이 온도이탈로 버려졌다는 것이다. 지난 5일부터 60~74세의 AZ 2차 접종이 진행되면서 잔여백신이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50대는 이미 화이자나 모더나로 1차 접종을 하고 있어 굳이 AZ로 잔여백신을 신청할 이유가 없고, 75세 이상도 화이자를 맞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국내에 공급되는 백신만 충분하면 남는 AZ 백신을 폐기해도 상관없는데, 백신이 부족하니 이렇게 정책 결정을 뒤집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은 AZ 백신 접종 연령 조정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다. 정부는 모더나 백신 수급 차질을 이유로 화이자 백신의 1, 2차 접종 간격을 제약사가 권고하는 3주에서 4주→6주로 두 차례나 바꿨다. 처음엔 펑크난 모더나 대신 화이자를 쓰기 위해서, 두 번째는 1차 접종률을 끌어올리려고 2차 접종분을 끌어 쓰기 위한 궁여지책이란 게 업계 분석이다.

AZ 백신 접종 권고 연령을 높였다 낮추는 과정에서 AZ 백신에 대한 안전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50대 이상은 1차 접종으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맞고, 부작용 위험성이 높은 30대와 40대가 AZ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졌다.

정부는 지침 변경과 관련해 국민에게 안전성이나 효과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현장에선 혼란이 잇따랐다. 잦은 정책 변경으로 정부 방역 대책이 신뢰를 잃어가는 상황에서 AZ 접종 연령을 낮춘다고 해서 접종 희망자가 얼마나 나올지도 미지수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가 백신 수급 상황에 따라 원칙도 없이 오락가락 정책을 남발하다 보니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18~49세 연령에 대한 백신 사전예약의 호응도 떨어진다. 이날 0시 기준 이들 연령대의 백신 예약률은 60.4%에 그친다.

서울 시내의 한 보건소 백신 냉장고에 보관 중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모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