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백신을 반도체, 배터리와 함께 ‘3대 국가전략기술’ 분야로 선정해 앞으로 5년간 2조2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국산 백신 개발을 목표로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구성한 ‘차세대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 플랫폼 기술 컨소시엄’(K-mRNA 컨소시엄)이 9일 자본·기술·생산 등 역량 총 결집을 위한 민·관 참여 독려에 나섰다.
K-mRNA 컨소시엄은 지난 6월 29일 에스티팜, GC녹십자, 한미약품 등 국산 mRNA 백신 개발 및 생산 역량을 갖춘 3개 기업과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목표로 출범한 기구다. 컨소시엄은 민관 참여 확대로 국산 코로나 19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나아가 mRNA 플랫폼 기술 및 원부자재 국산화로 신·변종 감염병 대응 백신 및 항암 백신 등도 개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 “컨소시엄, 국산 mRNA 백신 개발 ‘오케스트라’ 구성”
허경화 KIMCo 대표는 이날 “mRNA 플랫폼 개발 업체, 원부자재 공급 업체, 그 외의 바이오벤처 등이 관련 분야 역량을 갖고 있다면 컨소시엄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KIMCo는 작년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국내 56개 제약사와 공동출자해 구성한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으로, 컨소시엄에서 운영 지원 및 정부와 민간의 투자 유치, 정부의 정책지원 요청 등을 담당한다.
컨소시엄 측은 출범 당시에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시급성을 감안해 3개사와 KIMCo 주도로 나섰지만, 신속한 국산 mRNA백신 생산 목표 달성을 위해서 민·관의 추가 참여 기회는 열어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경화 대표는 “(컨소시움) 출범부터 다양한 플레이어가 모두 모였다면 완벽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웠다”고도 했다.
허 대표는 컨소시엄을 오케스트라에 비유하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맞는 화음을 내기 위해 세부적인 플레이어를 모집하고, KIMCo는 조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업의 애로사항, 건의사항을 정부부처 등과 협의한다고도 설명했다. 컨소시엄은 mRNA 백신 개발과 관련한 정부 지원 외 기업의 자체 투자 및 민간투자유치를 통해 자금 조달을 추진 중이다.
◇ 기술 개발⋅원자재 공급⋅생산역량 3박자 갖춰
컨소시엄은 mRNA 백신 플랫폼이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플랫폼이라고 봤다. 하지만 국내 제약 산업의 역량이 최첨단 신약 개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에 대해 컨소시엄 측은 “mRNA백신 플랫폼 개발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했다.
컨소시엄 측은 출범 당시 ▲2022년까지 1억 도스 분량의 mRNA백신 생산▲ 2023년까지 10억 도스 이상 대량 생산 체계 확보 및 해외 수출 추진▲2025년까지 mRNA 백신 플랫폼 기반 항암백신·차세대 혁신신약을 개발을 목표로 세우고, 실행 전략을 짰다.
1단계 전략으로 3사 주축으로 백신 기술을 개발하고, 2단계로는 mRNA플랫폼 기술 자립화(원료와 원부자재 국산화, 핵심기술개발, 대량생산체계 구축, 투자 등) 과정에서 기존 기업을 보완·대체하거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 또는 기관을 참여시키기로 했다.
에스티팜은 자사의 코로나19 mRNA 백신 후보물질 ‘STP2104’를 내년 연말까지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고, 한미약품은 생산에 필요한 pDNA(플라스미드 DNA)를 공급하고, GC녹십자는 향후 완제 백신 생산을 맡기로 했다. 글로벌 임상 등 후기 단계 임상은 3사가 공동 협력하기로 했다.
컨소시엄은 모더나·화이자 코로나19 백신과 동등 이상의 효과를 내는 백신 개발을 목표로 한다. 초저온 설비가 필요한 기존 mRNA 백신과 달리 영하 20도 수준의 일반 냉동 보관이 가능한 백신을 개발하고,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 후보물질도 연내 발굴키로 했다.
◇ 144조 mRNA 백신 시장 열린다…글로벌 경쟁 본격화
모더나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출시 mRNA 백신 시장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 인더스트리 아날리스트(GIA)는 mRNA 백신 시장 규모가 2021년 649억 달러(약 72조원)에서 연평균 11.9% 성장, 오는 2027년 1273억 달러(약 144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모더나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9억 3700만 달러(약 2조 2000억원)로 작년 매출액(8억 달러)를 이미 뛰어넘었다. 모더나의 올해 백신 매출액은 192억 달러(약 21조 8000억원)로 예측된다. 화이자는 올해 코로나19 백신으로만 약 260억 달러(약 29조 5000억원) 매출을 낼 전망이다.
일본 다이이찌산쿄, 프랑스 사노피 등도 mRNA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 다이이찌산쿄는 올해 수천명 규모의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고, 사노피는 mRNA 백신 연구개발에 매년 4억 유로(약 5390억원)를 투자해 2025년까지 최소 6개 mRNA 백신 후보물질을 선보일 계획이다.
◇ 韓정부, 미국 Warp Speed, 유럽 IMI 벤치마크 해야
K-mRNA 컨소시엄은 이런 목표 달성을 하려면 미국·유럽 사례와 같이 전폭적인 민관 지원이 필요하다고 봤다. 미국 모더나와 화이자가 코로나19 사태 1년만에 mRNA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은 미국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세간의 분석이다.
미국 정부는 ‘초고속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통해 모더나와 화이자에 각각 25억 달러(약 2조 8000억원)와 19억 달러(약 2조 1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와 유럽의약품산업협회(EFPIA) 회원사들이 공동 출자해 지난 2008년 출범한 유럽혁신의약품 이니셔티브(IMI)도 신약개발을 포함한 수 천 건의 연구 성과를 냈다.
IMI는 유럽연합(EU)이 자금의 절반, 제약사들이 나머지 절반을 출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민간에서 현재 개발이 시급하거나 공중보건 향상이 필요한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정부가 지원하게 된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변이 바이러스 확대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는 상황”이라며 “자체 개발·생산한 백신이 있어야만 국내 백신 수급도 안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 회장은 “산업계가 뜻을 모아 K-mRNA 컨소시엄을 결성한 만큼 백신을 신속히 개발할 수 있도록 민관의 전폭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mRNA백신의 원부자재 자국화, 개발역량 축적, 대량생산체계 구축 등을 통해 백신주권을 실현하고, 글로벌 백신 허브로의 도약 목표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에서 화상으로 주재한 ‘K-글로벌 백신 허브화 비전 및 전략 보고대회’에서 “세계적인 백신 부족 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특히 백신 보급의 국가별 격차가 심각해 일부 백신 부국은 ‘부스터 샷’을 계획하는 반면 다수의 저소득 국가는 내년까지도 접종 완료가 어려운 백신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며 “지금이 글로벌 백신 허브를 향해 과감하게 도전해야 할 적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필수 소재·부품·장비의 생산과 기술을 자급화해 국내 기업들이 생산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